[고미석 칼럼]그래도 시간의 물살은 못 이긴다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9-01-16 03:00:00 수정 2019-01-16 03:00: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일상용품 소변기, 예술로 변신하다… 뒤샹이 바꿔놓은 현대미술 지형도
AI 로봇 등이 바꾸는 노동의 미래… 불가역적 변화 앞에 역주행 노조
새 길 찾기 위한 책임의식 가져야


고미석 논설위원
1917년 4월 미국 뉴욕 독립예술가협회의 첫 전시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남자화장실용 소변기 하나가 버젓이 작품으로 제출된 것이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마르셀 뒤샹전에 그 소변기의 복제품이 와 있다.

뒤샹의 소변기는 100년 전 뉴욕에서 전시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숭배의 대상으로 등극했다. 그의 획기적 발상으로 현대미술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노라는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직접 만들지 않아도 예술가의 생각이 담긴 사물과 행위라면, 그게 뭐든 당당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당시 주류 예술인들은 전통적 울타리를 지키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기존 예술의 위계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과거에 매달렸던 예술가들을 결국 패배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의 물살이었다. 어디 예술만 그러할까. 지금 한국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에서도 심상찮은 조짐이 엿보인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 등이 기존 산업과 노동의 생태계를 넘보며 시시각각 다가온다. 이런 때 세계 최대 정보기술전시회에 참여한 LG전자 부회장이 잠재적 경쟁자로 아마존 구글을 지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오래전 허물어졌듯이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지난주 아마존이 제조업을 제치고 세계 시총 1위로 올라선 것에서도 이미 새 시대의 나침반의 향방을 엿보게 한다.


세계는 이처럼 혁신에 혁신을 향한 다툼이 치열한데, 한국 사회는 태평하기 짝이 없다. 태평성대가 아니라 무사태평이라 할까. 대변혁의 변곡점 앞에서도 느긋한 기득권 노조의 행태가 그런 증좌의 하나다. 이 땅의 청춘들이 선망하는 거대은행의 직원들이 노조 깃발 휘날리며 벌인 총파업. 강자들이 강짜를 부리는 동안 진짜 약자들은 제도권 밖에서 떠돌고 있다. 모바일 시대의 파업은 ‘파업하는 줄도 몰랐다’는 국민적 반응으로 귀결되면서 아날로그적 과다 인력의 실상만 드러냈다. “고객의 실망과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은 상상 이상의 고통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란 게 은행장의 탄식이었다. 지지부진 원격의료부터 카풀에 항전하는 택시업계까지 곳곳에서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집단들로 인해 마을 우물과도 같은 공동의 생명줄인 신산업은 발목이 붙잡혀 있다.

‘촛불정부’와 동반해 몸집을 한껏 불린 양대 노총의 호통만 우렁차다. 그 덩치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의식이 동반될 듯도 하지만 양 조직 수장의 발언을 보면 결이 한참 다르다. “자꾸 철밥통 이야기 하는데, 나는 철밥통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 모두가 철밥통 하나씩 들고 살았으면 좋겠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받는 사회적 체계를 바꿔야 한다.” 국민 다수의 귀에 공소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촛불청구서’란 말에서 잘 드러나듯 이들의 당면 관심사가 입발림처럼 사회개혁이나 평등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곤 한다.

‘노동의 종말’, 그런 타이틀로 제러미 리프킨이 미래를 예측한 것이 24년 전이다. 지금 우리가 그 시대를 살고 있다. 오래된 산업은 쇠퇴해서, 새로운 비즈니스는 기술 진화에 힘입어, 저마다의 법칙과 이유로 ‘정규직’의 존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의 로봇 대체도 시간문제라는데, 일반 업무라면 그 시기는 더 앞당겨질 터다. 이런 상황에 기득권 세력의 당당함이 혹여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 태도야말로 ‘보수(保守)’ 그 자체가 아닌지.

시간은 역사상 어떤 권력도 이기지 못한 강적이다. 비만 공룡이 된 거대 노조는 요즘 골목대장처럼 힘자랑을 벌인다. 아무리 그래도 시대의 변화는 그들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다. 양대 노총도 그들 앞에 쩔쩔매는 집권세력도 새로운 앞날의 경제와 노동의 패러다임 앞에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스스로의 무지와 무능 앞에 겸허할 때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터다.

불가역적 변화는 비핵화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책만 파는 서점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취향의 공간으로 혁신한 일본 쓰타야 서점의 창립자 마스다 무네아키가 말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끝났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할 때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