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재혼전문가’ 되기까지… “‘삼성맨 간판’ 버려야 했죠”

뉴스1

입력 2019-01-07 14:40 수정 2019-01-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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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도쿄지사장 출신 손동규 비에나래 대표
“재혼 사업은 공익사업… 깨달음 준 ‘제2의인생’”


손동규 비에나래 대표가 6일 서울 서초구 비에나래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18.12.6/뉴스1 © News1
재혼정보회사 비에나래 손동규 대표(63)는 주변을 놀라게 한 경험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그가 1999년 2월 삼성물산을 그만둔 것이다. 글로법 기업 삼성의 모태인 삼성물산은 그때만 해도 삼성전자(현 국내 재계 1위 기업)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고 있었다. 퇴사 직전 그의 직함은 도쿄지사 사장이었다. 삼성물산 내에서 요직으로 분류되는 자리였다.

두 번째 ‘사건’은 삼성물산을 그만둔 후 재혼 중매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돌싱 남녀(이혼한 남녀)’의 만남을 주선해 결혼으로 연결해주는 일이다. 삼성 출신 임원은 퇴사 후 보통 학계로 진출하거나 중소·중견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이동한다. 손 대표 전공은 무역·기획·국제 영업이다. 얼핏 보기에 ‘재혼 사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손 대표를 오랜 만에 만난 지인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재혼 사업을 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승승장구하다가 일터져… “자리 연연 않겠다는 생각으로 사표”

© News1
손 대표는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삼성물사 도교지사 사장에 올랐다. 대학 졸업 후 1981년 삼성건설(삼성물산 건설부문 과거 사명)에 입사한 후 18년 동안 줄곧 ‘삼성맨’으로 살았다. 미국·일본·영국·리비아 등 삼성물산 주력 시장부터 개척 시장을 돌며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던 셈이다.

이근배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고 노래했던가. ‘넘어질 것’ 같지 않은 자리에 앉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도쿄지사장 시절, 일본 수주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할 정도로 문제가 커졌다. 도쿄지사 사장은 현지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다. 손 대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자리에 연연하면 안 된다고 거듭 다짐했어요. 이참에 남몰래 ‘구상했던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삼성물산에 사직서를 내고 본격적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했습니다.”

‘구상했던 일’이란 다름아닌 ‘재혼 사업’이었다. 도교지사 근무 시절 크게 느꼈던 게 있어서다. 일본에서 ‘이혼’은 큰 흠결이 아니었다. 이혼 사실을 숨기기보다 당당하게 밝히고, ‘제2의 동반자’를 찾는 일본인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도 일본처럼 이혼율이 상승하고 있었다.

“머지 않아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재혼 분위기가 확산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일본은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가부장적 男에 실망해 이혼한 女회원 많아”… “재혼이란 ‘가족의 회복’”

재혼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본 셈이다. 그는 18년 전 시장에 매물로 나온 재혼정보 회사 ‘비에나래’를 약 3억원에 인수했다. 2000년 7월 비에나래 운영을 시작했다.

손 대표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소폭 상승하던 이혼율은 새 천년을 앞둔 1998년 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매년 0.1%씩 상승하던 이혼 증가률이 1998년 갑자기 2.5‰로 뛰었다. 이혼률은 여전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돌싱’은 ‘트렌드’라고 불릴 만큼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했다.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 상승이 이혼율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손 대표도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여성 회원 가운데 남성의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에 실망해 이혼을 결심했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여성들이 그만큼 자신의 인권과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죠.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이른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사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어요. 여성의 성평등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성차별이 완화하는 것은 사회가 선진국으로 향하는 신호라고 하죠? 이런 차원에서 보면 이혼 부부가 증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해요.”

이혼은 사회 기본 단위인 ‘가족’의 붕괴를 경고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손 대표는 “회원들을 상담하면 과거에 비해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나름대로 공익 사업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재혼 사업에 임하고 있다”며 “재혼은 사회 기본 단위인 가족의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뭔지 아십니까? 돌싱 남녀 중 40% 정도(남 42.8%, 여 38.1%)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믿고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는 점이에요. 한창 빠질 때는 상대의 매력과 장점만 보이죠. 그러다 결혼 뒤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단점이 서서히 보입니다. 결혼 생활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에요.”

외로움에 시달리는 회원들을 최고의 재혼 커플로 만드는 게 손 대표의 목표다. 또 다시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회원들 간 성향을 냉정하게 분석해 이어주고 있다고 손 대표는 자부했다. 그는 “재혼 커플이 늘어야 더 활기찬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 시행착오로 10kg 빠져… “자신부터 변해야 제2의인생”

2000년 7월 삼섬 근무 시절 동료들과 ‘비에나래 창업’ 을 기념 하는 손동규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 © News1
손 대표는 비에나래 자매회사 ‘온리 유’도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에 가입한 회원은 약 1만8000명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재혼을 희망하는 회원이다. 손 대표 회사 중매로 그동안 재혼부부 5000쌍이 탄생했다. 그는 “회사 성혼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자부한다”며 “사업도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 비에나래는 쉽게 무너지지 않은 강소기업이 됐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솔로탈출 2030’ ‘만남이 좋다 데이트가 즐겁다’ ‘인생빅딜, 재혼’ 등 책 세 권을 썼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 신문, 라디오 등과 총 180여 차례 인터뷰를 했다. 국내 최고 재혼 전문가로 어엿하게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다만 ‘삼성맨 자부심’은 ‘제2의 인생 설계’에 독이 됐다고 그는 털어놨다. 사업을 막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회사를 삼성식으로 꾸리려고 했다. 급여·복지·사무환경에서 회사를 ‘삼성식’으로 설계하려고 했다가 금세 ‘탈’이 났다.

“직원들도 삼성 직원처럼 명문대 출신을 선호했어요. 학력에 따라 급여를 차등 지급했습니다. 당연히 직원들은 반발했고 퇴사 행렬이 이어졌어요. 삼성 경력과 경험, 간판이면 충분히 통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살이 10kg나 빠졌어요. 머리 숱이 참 많았는데 탈모 증상에도 시달렸지요.”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제2의 인생은 ‘새로운 삶’임을 자각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했다.

“학력보다는 실무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죠. 업무 능력과 학력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사실 누구나 다 아는 것인데, 실천하기 힘든 생각이죠. ‘제2의 인생’을 살지 않았다면 저 역시 이를 실천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후 실질적으로 회사에 기여하는 직원을 뽑았다. 어떤 유형의 인재가 회사에 필요한지, 지금 자신의 현실이 어떤지 냉정하게 보고 실행에 옮겼다. 손 대표는 “창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오피니언 리더’라면 경청할 만한 얘기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하나 있어요. 누구보다 자신이 세상을 잘 알고 무엇을 하더라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몸담았던 조직에서 나오면 ‘진짜’ 세상이 펼쳐집니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시야가 무척 좁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어요. ‘오피니언 리더’ 지위를 버리고 ‘새롭게 배우겠다’는 각오 없이는 ‘제2의 인생’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바로 자신부터 변해야 ‘인생 2막’을 펼칠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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