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저 붉은노을 닮아 더 슬퍼지는 첫사랑

양형모 기자

입력 2019-01-04 05:45 수정 2019-01-04 05:45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주인공 명우의 추억여행 가이드 ‘월하’를 연기하는 김호영(왼쪽)과 그런 명우의 첫사랑 ‘중년 수아’ 역을 맡은 이은율. ‘광화문연가’는 초연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사진제공|CJ ENM

■ 뮤지컬 ‘광화문연가’ 김호영 & 이은율

스토리·배역·연출 수정으로 완성도 높여
관객과 합창하는 ‘싱어롱 커튼콜’도 진행
“피를 토하듯…내일이 없는 것처럼 열연”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연가’, ‘붉은노을’, ‘옛사랑’, ‘그녀의 웃음소리뿐’, ‘소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가수 이문세가 불러 전 국민의 가슴을 촉촉이 적셨던 고 이영훈 작곡가의 명곡들로 만든 뮤지컬 ‘광화문연가’.

2011년 초연된 이후 재연될 때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한국 창작뮤지컬의 자존심을 세워 온 ‘광화문연가’는 이번 시즌에도 어김없이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리고 있다.

공연장과 가까운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호텔 인터뷰룸에서 김호영, 이은율 두 배우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12년 뮤지컬 ‘쌍화별곡’에서 의상대사와 요석공주로 한 무대에 선 인연이 있다. ‘광화문연가’에서는 ‘월하’와 ‘수아’를 연기 중이다. 김호영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광화문연가는 2017년 버전”이라고 했다.

‘광화문연가’는 2017년 대폭 수정된 모습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김호영에 따르면 스토리, 배역, 연출 스타일, 노래 배치 등이 싹 바뀌었다. 한마디로 초연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김호영이 맡은 ‘월하’는 새 버전에 삽입된 인물이다. 아니 ‘인물’이 아니다. 김호영은 “성별이 없는, 아예 사람이 아닌 존재다. 주인공 명우의 시간여행을 돕는 추억 가이드라고나 할까”라고 했다.

성별이 없는 캐릭터이기에 ‘월하’는 남녀배우가 함께 캐스팅됐다. 김호영, 이석훈 외에 여배우 구원영이 월하를 맡았다. 이렇게 하나의 역할을 남자와 여자배우가 동시에 맡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공연 모습. 사진제공|CJ ENM

이은율은 명우의 첫사랑인 수아 역이다. ‘젊은 명우(정욱진·이찬동 분)’와 ‘중년 명우(안재욱·이건명·강필석 분)’가 나뉘어 있듯 수아도 ‘젊은 수아(린지·이봄소리 분)’와 ‘중년 수아’가 따로 있다. 이은율은 임강희와 함께 ‘중년 수아’를 연기한다.

“명우의 첫사랑. 남자건 여자건 자신만의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은 것이 첫사랑이다. 비록 그것이 과하게 포장되었을지라도, 명우는 수아에 대한 혼자만의 추억으로 인해 주옥같은 곡들을 작곡할 수 있었다. 수아는 명우에게 뮤즈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은율)

공연계 최고의 끼쟁이 김호영은 과연 명불허전. 일명 ‘월하 전용 계단’을 오르내리며 작품의 전막을 휘젓는다. 압권은 1막 끝곡인 ‘그녀의 웃음소리뿐’. 김호영은 ‘원키(여성키로 편곡되어 있다)’로 이 곡을, 그야말로 피를 토하듯 부른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2막에 안 나오는 사람처럼 부른다. 부르고나면 거의 눈멀기 직전이다. 아마 내 다음 작품은 ‘서편제’의 송화가 아닐까.” (김호영)

성악 전공자이자 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 교수이기도 한 이은율은 “김호영은 이런 성대를 타고난 사람”이라고 했다.

최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어롱 관람이 화제가 됐는데, ‘광화문연가’에도 배우와 관객이 합창하는 시간이 있다. 싱어롱 커튼콜 날을 따로 정해놓고 모두가 목이 터져라 ‘붉은노을’을 부른다. 이문세 세대와 빅뱅 세대가 하나되는 진기한 풍경이 연출된다.

차디찬 겨울바다 위로 번지는 노을처럼 붉고 긴 여운을 남기는 뮤지컬. 죽기 1분 전 명우는 자신을 추억 속으로 데려가 줄 월하를 만난다. ‘광화문연가’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봐두어야 할, 몇 안 되는 ‘월하’와 같은 작품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