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주역들이 본 영화 ‘국가부도의 날’…어디까지 실화일까

이새샘 기자 , 세종=이새샘기자

입력 2018-12-07 15:33 수정 2018-12-0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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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6일 기준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는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에 이르게 된 과정을 긴박하게 묘사해 당시 어두운 터널을 직접 경험한 30, 40대 관객들의 기억을 끌어내며 공감을 얻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는 극적 재미를 위해 사실과 다르게 묘사된 장면도 많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지만 아직까지 평가가 엇갈리는, 비교적 최근의 사건인 만큼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도 있다. 국회 국정조사 회의록, 관계자들이 남긴 저서와 언론 보도 등을 참고하고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했던 인물들을 인터뷰해 6가지 의문점을 정리했다.

#의문 1. 한시현 팀장, 윤정학, 갑수는 실존 인물일까?

영화는 주인공 3명의 동선을 대비하며 극적 효과를 높인다. 한국은행의 한시현 통화정책팀장(김혜수)은 경제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종합금융회사에 다니던 윤정학(유아인)은 위기를 기회로 보고 투자자를 모아 ‘한판’을 벌인다. 공장을 운영하는 갑수(허준호)는 납품 대금으로 백화점 어음을 받지만 백화점이 부도가 나면서 절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 3명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특히 한은 통화정책팀장은 존재하지도 않는 직책이다. 윤정학도 실존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금융계에는 경기 흐름을 절묘하게 읽은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한국 경제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성공을 거둔 ‘바이코리아 펀드’의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나 국내 최초의 뮤추얼 펀드 ‘박현주 1호’로 성공신화를 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등이 대표적인 예다.

갑수는 실존이기도 하고 가상이기도 한 인물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인 이듬해인 1998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8569명으로 1997년(6022명)보다 30% 이상 급증했다. 평범한 가장이자 중산층이었던 갑수의 절망은 당시 우리 사회가 겪었던 고통을 대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정부 관료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과 일대일로 연결되지만 인물에 대한 묘사는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벌과 결탁한 부패 관료로 그려지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강만수 당시 재경원 차관으로 추정된다. 이경식 총재와 김인호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도 이름 없이 직함만으로 영화 속에 등장한다.

#의문 2. 재정국(재정경제원) 관료가 IMF 구제금융으로 상황을 몰고 간 것일까?

영화에서 재정국은 대기업에 유리하게 한국 경제를 개편하기 위해 IMF 구제금융을 받도록 상황을 몰고 간다. 반면 한시현을 비롯한 한은 직원들은 이를 막으려 애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경제가 어찌 되어 가는 거요?”라고 묻자 이 총재가 “‘김인호 당시 경제수석에게 IMF로 가는 것 외에 국가부도를 막을 방법이 있느냐’고 강하게 하문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한은이 IMF 구제금융을 불가피하게 봤고, 강경식 당시 부총리는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되도록 IMF행을 피하려 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영화는 한은 직원들이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거나 일본 정부에서 달러를 빌려오는 등 대안을 냈는데도 재정국이 이를 가로막은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재경원 공무원들의 아이디어였다. 이런 대안을 검토했지만 당시 한국 상황으로선 성사시키기 힘든 카드였다.

당시에는 오히려 ‘왜 IMF에 좀더 빨리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았나’가 쟁점이었다. 정부가 의사결정에 속도를 내지 못했고, 시간에 쫓긴 IMF와의 협상 결과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의문 3. 정책 결정권자들은 정말 ‘국가부도’ 직전까지 상황의 심각성을 몰랐을까?

영화는 한시현이 한은 총재에게 수차례 보고서를 올리지만 무시당한다. 재정국 차관도 사태가 악화될 때까지 한시현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는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한국은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를 낸 뒤 3월 진로그룹 부도 위기, 9월 말 기아그룹 화의 신청이 이어지며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었다. 여기에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이 차례로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현실화하고 있었다.

실제로 1997년 7월에는 재경원에서 ‘밧화와 기아-상이한 문제인가’라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통화위기가 어느 정도 심각하게 나타날 것인가는 우리 정부와 기업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불안감이 높아지자 강 전 부총리는 당시 미국과 유럽을 돌면서 ‘한국 경제 설명회’를 열 정도였다. 한국 경제는 ‘펀더멘털’(기초)이 튼튼하니 안심하고 투자해도 된다는 내용이었다. 부총리가 직접 홍보에 나서야 할 정도로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불신이 컸다.

그 때 정부는 국회에서 금융개혁안을 통과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금융개혁으로 경제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다만 정권 말 레임덕과 야당의 반대로 개혁은 지연됐고 정부는 단기 대응에도 실패했다.


#의문 4. 정부는 IMF 구제금융 신청 사실을 숨겨 국민들이 피해를 보도록 방치했을까?

영화는 재정국 관료들이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숨겨 국민들의 피해를 키우고, 재벌들에게는 뒤로 이 사실을 알려 이득을 챙기도록 했다는 음모론을 내세운다. 특히 교체된 신임 대통령경제수석은 IMF 구제금융 신청을 결정해두고도 기자들 앞에서 당당히 “IMF로 가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한다.

정부가 구제금융 신청 여부를 놓고 오락가락한 것은 사실이다. 구제금융 신청을 사실상 확정하고 발표를 하기 직전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경제수석과 부총리를 전격 교체하면서 혼선은 더욱 커졌다. 새로 임명된 임창열 당시 부총리가 강 전 부총리가 발표할 예정이었던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임명 당일인 11월 19일 발표하면서도 ‘IMF로 간다’는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이 대목은 이후 국회 국정감사와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며 두고두고 논란이 된다. 김 전 대통령과 강경식 전 부총리는 임 전 부총리에게 IMF 관련 결정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 전 부총리는 국감에서 “IMF와 협의 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미 구제금융 신청이 결정됐다는 점은 인수인계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누구의 말이 옳든, 당시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리더십 공백기’였던 점만은 분명하다.

#의문 5. 미국은 정말 IMF를 막후에서 조종하고 있었을까?

영화에는 IMF와의 협상 도중 같은 호텔에 미국 재무부 차관이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시현이 IMF 측에 “왜 미국 재무부 차관이 이 호텔에 와 있느냐”고 호통 친다. 미국의 지시대로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지 따져 묻는 장면이다. 외환위기의 배경에 한국 경제를 집어삼키기 위한 미국과 거대 투기 자본이 있었다는 음모가 드러나며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실제 영화가 참고했을 만한 순간이 있었다. 당시 재경원 제2차관으로 협상팀 수석을 맡았던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우리나라가 IMF로 가게 된 과정과 협상 막전막후를 상세히 기록한 ‘외환위기 징비록’에서 “당시 미국 재무부의 데이비드 립튼 차관이 IMF 협상팀과 같은 힐튼 호텔에 묵으며 협상팀을 만나는 장면이 한국 협상단에 목격됐다”고 썼다. 그는 “이후 그와의 대화를 통해 자본시장 개방 등 IMF의 조건이 실은 미국의 주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IMF의 가혹한 요구 조건에는 경제 개방은 늦추면서 공격적인 수출 정책을 펼치는 한국을 탐탁지 않아 하던 미국의 입김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미국의 음모로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IMF는 각 국가가 출자한 지분에 따라 의사결정권을 갖는 국제금융기구다. 미국의 지분이 17% 안팎으로 가장 높다. 돈을 빌려주는 입장인 미국이 협상에 관여하는 것은 당연한 면이 있다. 미국이 일부러 배후에 숨은 것도 아니었다. 주요 협상 파트너였던 스탠리 피셔 당시 IMF 부총재부터 미국 측 인사였고, 티머시 가이트너 당시 미국 재무부 차관보 등 미국 측 인사는 구제금융 신청 전부터 한국을 드나들고 있었다.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IMF의 무리한 요구로 한국 경제가 과도한 부담을 진 측면이 있지만 모든 것을 음모로만 볼 수는 없다.

#의문 6. 현재 경제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를 우려해야 할 정도일까?

영화는 21년 뒤인 현재 한국을 조명한다. 1500조 원 규모로 불어난 가계대출이 위기의 도화선이 될 거라는 경고를 담았다. 실제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 중 하나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 도산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정책 결정권자의 무능, 정치적 리더십의 실종,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등 영화에 담긴 위기의 원인은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의 가계부채가 1997년과 같은 위기로 직접 이어질 것으로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면서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 등 서민들의 가계 소득이 악화하는 것이 문제”라며 외환위기와 지금 경제 상황은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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