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지으려면 학교 지을 땅 더 갖고 오라”…저출산 대책 엇박자

강성휘기자

입력 2018-11-25 14:22 수정 2018-11-2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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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최근 한 건설사는 올해 경기 하남시 감일지구에 분양하려던 새 아파트 청약을 내년 상반기(1~6월)로 미뤘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초등학교 지을 땅을 더 갖고 오라”는 경기도 교육청의 반대 때문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학교 용지 공급 문제는 건설사가 나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그로 인한 손해를 건설사가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조성작업이 진행 중인 수도권 신도시에서 학교 용지 추가 공급 문제를 두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교육청이 마찰을 빚으면서 아파트 분양이 미뤄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대책의 일환으로 청약제도를 어린 자녀가 있는 젊은층에 유리하게 바꿨는데, 정작 자녀들이 다닐 학교 확충 계획은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학교 용지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 아파트 분양 중이거나 입주가 한창인 수도권 신도시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는 올해 계획했던 위례신도시(하남시 학암동) 내 신규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초등학교 과밀이 우려된다는 교육청의 반대에 부딪쳐 분양을 못하고 있다. 신혼부부가 많이 들어오면 초등학생도 늘어날 텐데 기존 택지 조성 계획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건설사는 택지 조성주체인 LH, 교육청과 협의해 인근에 예정됐던 초교 용지를 더 넓은 곳으로 옮기고 6차선 도로를 깔기 위해 남겨둔 땅까지 학교 용지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약 80% 가량 입주한 하남시 미사지구에서도 초교 용지 추가 공급을 두고 LH와 교육청이 대립하고 있다. 미사지구는 2009년 택지지구 조성 당시 학급 당 초등학생 수를 35명으로 추산했지만 지난해 실제 학생 수가 37명을 넘어섰다. 교육청은 급한 대로 미사지구 내 초교 4곳을 증축했지만 학교를 통째로 신설하지 않으면 과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용지 갈등은 택지 공급 계획을 세울 때와 달라진 청약제도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5월부터 신규 분양 아파트 내 신혼부부 특별공급 비율을 기존의 2배(민영분양 20%, 공공분양 30%)로 늘리고 자격 요건도 결혼 5년 이내에서 7년 이내로 완화했다. 또 위례와 하남 등 서울 인근 택지지구에 신혼부부만을 위한 공공분양 물량도 늘리기로 했다. 이 때문에 이들 지역의 택지 공급 계획을 수립할 때와는 달리 예상 초등학생 수가 늘어나게 됐다. 이밖에도 부양가족수가 많은 사람에게 청약 당첨 기회를 더 주는 가점제 확대 역시 학생수가 예상보다 늘어나게 된 요인으로 꼽힌다.

LH 관계자는 “최근 주택시장 열기가 고조되면서 실수요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신도시 아파트를 사들이는 사람이 늘면서 실제 입주민 중 실제 집주인 대신 세입자 비율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LH는 신도시 초등학생 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줄어드는 경향이 있으며, 위례나 감일지구의 경우 아직 입주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미리 학교 용지를 추가 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견해다.

국토부는 대책 마련에 착수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앞서 21일 국토부가 발표한 위례신도시 내 신혼희망타운 공급계획에도 유치원 용지 확보 계획은 있지만 초교 과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없다. 국토부 관계자는 “교육청과 면밀히 협의해 문제없도록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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