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우, 파도 파도 끝이 없다…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뉴시스

입력 2018-11-22 10:47 수정 2018-11-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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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38)는 극의 하이라이트인 ‘대결’을 부르는 장면에서, 선과 악을 순간적으로 동시에 스케치했다. 오른쪽 얼굴은 고뇌에 찬 지킬, 왼쪽 얼굴은 분노로 가득한 하이드로 꾸미고 몸을 좌우로 돌려가며 열창할 때 지킬은 지킬, 하이드는 하이드였다.

화룡점정은 지킬과 하이드 각각의 모습과 두 성격이 교묘하게 엉키는 순간을 그림처럼 잡아내고, 사진처럼 포착해낸 부분이다. 지킬의 불안함과 하이드의 비열함을 1~2초 간격으로 번갈아 드러내야하는 감정선이 주를 이룬다. 기술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목소리 톤과 동작의 수그러듦 여부를 표현하는 기술이다.

21일 오후 잠실 샤롯데시어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타이틀롤 조승우는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는 의사와 그 안에 본능의 뒤틀린 폭력적 자아의 불화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며, 원작 소설의 정수를 압축해놓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원작이다. 상반된 두 인격을 지닌 주인공, 그를 사랑하는 두 여인의 비극적 로맨스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감미로우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 입성 당시에는 호평받지 못한 작품이다. 2004년 국내 초연 이후 특히 한국 프로덕션이 인기를 끌었다. 라이선스더라도 변형이 가능한 논레플리카 형식으로 국내 제작진이 새롭게 기획, 구성한 작품으로 한국화가 잘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조승우가 있다. 이 작품의 초연으로 스타덤에 오르며 ‘조지킬’로 불린 그다. 2010년 군 전역 후 가장 먼저 택한 작품도 ‘지킬앤하이드’다. 티켓 예매가 오픈되자마다 매진되고, 온라인에서 암표가 나돈다는 것은 이미 14년 전부터 내려온 이야기다.

이번 ‘지킬앤하이드’ 시즌 전까지 이미 지킬&하이드 역으로 243회 출연했다. 조승우가 약 4년 만에 출연한 ‘지킬앤하이드’인 이번 시즌도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좌석이 순식간에 동나고 있다. 이런 조승우의 연기와 성과에 새삼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다만 이번 지킬&하이드는 비워낸 감정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느낌이다. 무대는 아무래도 연기와 표현력이 과장될 수밖에 없다. 2년 전 뮤지컬 ‘헤드윅’과 ‘스위니 토드’에 잇따라 출연한 후 ‘비밀의 숲’의 황시목, ‘라이프’의 구승효, ‘명당’의 박재상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 감정을 절제한 캐릭터를 연기한 조승우는 뮤지컬 컴백 무대인 ‘지킬앤하이드’의 초반에서 좀 더 정갈한 지킬의 모습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후반부 하이드의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다.

조승우는 레치타티보를 뮤지컬에도 적용시키는 대표적인 배우다. 오페라나 종교극 따위에서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이다. 그의 노래는 말 그대로 노래처럼 들린다기보다 선율이 있는 대사처럼 들린다. 뮤지컬팬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지금 이 순간’은 그래서 강력한 대사다. 선과 악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자신에게 주사를 투약하기 직전, 모든 관객은 지킬의 마음이 된다.

이처럼 극의 전체 흐름을 읽고 호흡의 강약을 조절해가는 조승우는 또 진화했다. 이미 하나의 큰 아우라가 생긴 조지킬을 연기하는 조승우나,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매번 일종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를 매번 이겨내고 기대 이상의 감흥을 선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감흥은 커튼콜에서도 이어진다. 지킬일 때 긴 머리카락을 동여맨 머리끈을 풀어, 객석에 던진 뒤 강력한 오른손 어퍼컷과 함께 공연장이 암흑으로 바뀌는 마지막 장면은 언제 봐도 쾌감이다.

조승우는 2010년 전역 후 이번 ‘지킬앤하이드’까지 지난해를 제외하고 거의 매년 뮤지컬에 출연해왔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섹시한 조로를 보여준 ‘조로’(2011), 평가가 엇갈린 작품에 구원투수로 나서 ‘무대 장르는 배우의 예술’임을 증명한 ‘닥터 지바고’(2012), ‘끼’와 유연함을 유감 없이 펼쳐낸 ‘헤드윅’(2013), 지치지 않는 삶에 대한 돈키호테의 열정을 소멸하지 않는연기에 대한 갈망으로 치환한 ‘맨오브라만차’(2013),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명불허전 ‘조드윅’을 증명한 ‘헤드윅’(2014), 역시 진부하지 않은 지킬&하이드를 보여준 ‘지킬앤하이드’(2014), 애드리브가 많고 장난스러운 가운데서도 묵직한 울림을 전달한 ‘맨오브라만차’(2015), 관객의 이성을 앗아가는 감성을 보여준 뮤지컬 ‘베르테르’(2015), 무대 위에서 애써 힘을 들이지 않아도 캐릭터의 최대치를 끌어올리는 힘을 증명한 ‘헤드윅’(2016), 침잠하지만 광기가 똬리를 틀고 있는 캐릭터를 보여준 ‘스위니 토드’(2016)가 출연작 목록이다. ‘조로’ ‘닥터지바고’ ‘스위니토드’ 등의 신작도 있으나 조승우는 본인이 잘하고 익숙한 작품들을 선택해왔다. 10주년, 15주년 등을 맞이한 작품에 의리를 지킨 것도 있지만 뮤지컬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는 뜻도 된다. 욕심을 내기보다 자신의 캐릭터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스펙트럼을 서서히 넓혀가는 현명함은 왜 뮤지컬계가 ‘조승우 천하’인지를 증명하는 보기 중 하나다.

한편, 오디컴퍼니는 조승우와 함께 이번 시즌 ‘지킬앤하이드’에 가창력으로 소문난 홍광호(36), 박은태(37)를 앞세웠다. 여자 주역들도 화려하다. 비극적 로맨스의 주인공 ‘루시’는 윤공주, 아이비, 해나가 맡았다. 지킬과 약혼해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엠마’는 이정화와 민경아다.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가 2016년 월드 투어 버전에서 선보인 무대가 이번에도 적용됐다. 2층을 축으로 한 다이아몬드 구조는 인물들의 동선을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을 부르기 전 등장하는 실험실에서 알록달록한 물약이 담긴 1800개의 메스실린더 풍경은 호사스럽다. 내년 5월19일까지 샤롯데시어터.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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