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김동연이 건넨 봉투
이승헌 정치부장
입력 2018-11-21 03:00:00 수정 2018-11-21 03:00:00

2014년 7월 비 오는 어느 수요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이 나 인사차 들렀더니 김동연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A4 크기였다. “내 보물이다. 나중에 보라”며 씩 웃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워싱턴 근무 시절 겪었던 각종 일화를 들려줬다.
하지만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봉투 안이 너무 궁금했다. 알고 지낸 짧지 않은 시간을 감안했을 때, 그동안 공개할 수 없었던 특종 자료라도 들어 있을 듯했다. 양해를 구하고 뜯었다. 그런데 안엔 자신이 몇 년간 언론 매체 등에 쓴 칼럼 사본들이 있었다. “경제 관료가 아닌 인간 김동연의 글”이라고 했다. 자신이 찍은 꽃 사진을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담아 주변에 돌리는 박병원 전 경총 회장(전 대통령경제수석)을 빼고 이런 식으로 자신을 알리는 공무원은 처음이었다. 신선하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읽어 보니 실제로 연극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썼다. 정치인들이 출마하기 전 엮어 내는 수필집보단 수준이 높았다. 아무튼 그를 ‘범생이’ 경제 공무원의 틀로만 해석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짐을 싸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에피소드가 떠오른 건 그가 또 다른 논란의 한복판에 들어선 듯해서다. 이번엔 정치다. 벌써 2020년 총선 이야기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의 러브콜은 노골적이다. 정진석 의원은 “2016년 새누리당 시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려 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김 부총리의 고향(충북)을 중심으로 맞불 차원에서라도 영입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심지어 지역 정가에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이 잇따라 스러지면서 꺼져가던 ‘충청 대망론’을 김 부총리가 살려야 한다는, 다소 성급한 말까지 들린다.
김 부총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정치엔 아무런 뜻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김 부총리는 그의 칼럼 봉투처럼 공무원이란 프리즘으로만 보기엔 복잡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고위 관료는 “자기애가 있다. 좋게 말하면 동기부여가 강하다”고 했다. ‘김&장’으로 시끄러울 때 청와대 주변에서 “김동연이 자기 정치를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두 가지 정치적 브랜드 때문에 김 부총리는 꽤 오랫동안 정치 참여를 고민할 것이라고 기자는 본다.
우선 흙수저 브랜드. 상고, 야간 대학을 거쳐 부총리까지 이어지는 신화는 식상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지금 정치권엔 이름만 대면 딱 떠오를 만한 스토리의 씨가 말랐다. ‘노무현의 유업을 잇는’ 문재인 대통령 정도가 유일하다.
또 하나는 ‘김&장’ 시절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던 혁신성장 브랜드. 내년 경제도 우울하다면 향후 정치권의 핵심 어젠다는 경제, 그중에서도 소득주도성장(소주성) 관련 논란일 가능성이 높다. 야당이 2020년 총선에서 ‘소주성 심판론’을 내세우려면 그 대척점에 섰던 김 부총리만 한 선봉장이 없다. 거꾸로 민주당 입장에선 김 부총리를 영입하면 ‘소주성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김 부총리가 정치에 몸을 던질지는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다. 여야에서 하도 말이 많으니 고민이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간만 볼 요량이라면 아예 발도 담그지 않는 게 낫다. 특히 정치 입문 20일 만에 하차한 고향 선배 반기문 전 총장 같은 행보는 안 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국민들의 정치적 냉소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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