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활동 보장과 강제근로 금지조항이 핵심… 국내법부터 개정해야

유성열 기자

입력 2018-10-23 03:00 수정 2018-10-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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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A to Z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공무원과 교사의 파업권을 보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이달 중 노사정 합의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해 9월 4일 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을 만날 때의 모습. 청와대 제공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최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ILO 핵심협약 비준을 여러 차례 약속했고,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시켰다.

노동계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만큼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 노동자 처우를 선진국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영계는 시기상조라는 태도다. 또 ILO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국내법을 개정해야 비준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ILO 핵심협약을 노동계 바람대로 조기에 비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ILO 핵심협약이 무엇이며, 비준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봤다.


○ 비준하지 않은 ILO 핵심협약은?


ILO는 1919년 베르사유 평화조약(1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서 체결된 평화협정)에 따라 국제연맹 산하기구로 설립된 뒤 1946년 국제연합(유엔) 산하기구로 편입됐다. 당시 공산주의가 확산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주요 선진국은 세계 각국에 공통으로 적용할 국제노동기준을 설정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ILO를 만들었다. 현재 회원국은 187개국이다.

ILO는 그동안 체결한 189개 협약 가운데 △노조활동 보장 협약(87, 98호) △강제노동 금지 협약(29, 105호) △아동노동 금지 협약(138, 182호) △균등대우 협약(100, 111호) 등 8개를 핵심협약으로 정했다. 8개 협약은 최소한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회원국들이 가급적 비준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ILO가 협약 비준을 회원국에 강제할 권리는 없다.

한국은 1991년 152번째로 ILO에 가입한 뒤 1996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8회 연속 이사국을 맡고 있다. 나름 ILO의 ‘중추국가’로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은 189개 협약 가운데 29개 협약만 비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미국 다음으로 적다. 특히 핵심협약 중 노조활동 보장과 강제노동 금지 관련 협약 4개를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 협약 비준하면 노조 권리 확대되지만…


1996년 김영삼 정부는 OECD에 가입하면서 이 핵심협약 4개를 비준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당선인 신분으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이 협약들의 비준을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실 지킬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다. 협약 내용들이 국내법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ILO 핵심협약 87호와 98호를 비준하면 공무원과 교사에게도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해직 공무원과 교사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은 공무원과 교사의 단결권(노조를 결성할 권리)과 단체교섭권(정부와 근로조건을 협상할 권리)을 인정하지만 단체행동권, 즉 파업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직 공무원과 교사의 노조 가입도 금지하고 있다.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현재 ‘법외노조’ 상태다.

핵심협약 비준은 노조법과도 충돌한다. 한국에선 보험설계사나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등 이른바 ‘특수고용직’(근로자 성격이 강한 개인사업자)의 노조 설립과 가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노조법상 ‘근로자’만이 노조를 만들 수 있는데, 특수고용직은 ‘근로자’와 ‘사용자’ 지위를 모두 갖고 있다. ILO 협약 87호와 98호를 비준하면 특수고용직의 노조 설립이 가능해진다.

핵심협약 비준 시 대체복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국내 병역법도 손봐야 하다. 현재 대체복무로 허용하는 사회복무요원과 산업기능요원(군 복무 대신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일을 하는 제도)의 임금이 적어 강제노동에 해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ILO 핵심협약과 맞추려면 대체복무의 종류를 확대하고, 대체복무에 따른 대가를 국가가 정당하게 지급해야 한다.


○ “사용자 방어권도 같이 확대해야”


정부는 국제법과 국내법이 충돌하는 만큼 국내법을 먼저 개정한 뒤 ILO 핵심협약의 국회 비준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시 말해 해직 교사의 노조 가입을 허용해 전교조를 합법화시키고, 공무원과 교사의 파업권을 보장하는 한편 대체복무제를 크게 확대하는 방향으로 병역법을 개정하겠다는 얘기다. 특수고용직의 노조 설립도 허용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다. 노사정 대표와 전문가로 위원회를 꾸린 경사노위는 이달 안에 노사정 합의를 도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공무원과 교사의 파업권 보장은 국민정서상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또 경영계는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조의 권리를 확대한다면 △파업 요건 강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을 통해 사용자의 권리도 동일하게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한국처럼 파업이 난무하는 나라는 없다”며 “협약 비준으로 노조의 단체행동권이 강화된다면 사용자의 방어권도 확대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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