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었다 폈다 ‘폴더블폰’… 시장선점 경쟁 후끈

송진흡 기자

입력 2018-10-06 03:00 수정 2018-1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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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동진 삼성전자 IM부문장은 지난달 초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폴더블폰(Foldable Phone·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스마트폰) 개발을 거의 마무리했다”며 “이제는 내놓을 때”라고 말했다. 올해 8월 미국에서 열린 ‘갤럭시 노트9’ 공개 행사에서 “세계 최초 폴더블폰 타이틀을 뺏기고 싶지 않다”고 했던 것보다 한층 진전된 발언이었다.

#2 지난달 초 인터넷에는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인 BOE가 개발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폴더블 스마트폰 시제품 영상이 공개됐다. BOE는 중국 화웨이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업체. 관련 업계에서는 세계 최초로 폴더블폰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한 화웨이가 고 사장 발언에 자극받고 영상을 흘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차세대 모바일 디바이스로 꼽히는 폴더블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내외 전자업체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포화 상태에 이른 기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고 폴더블폰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글로벌 폴더블 스마트폰 판매량은 2022년에는 50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 암운이 드리워진 스마트폰 시장


애플이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로운 스마트폰 모델인 ‘아이폰XS’와 ‘아이폰XS맥스’, ‘아이폰XR’를 공개한 뒤 나온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눈에 띄는 혁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9’이 나왔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듀얼 카메라, 커브드 디스플레이, 안면인식 등 새로운 기능과 장치가 장착돼 이전 제품과 다르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냉담하다. 과거 미국 모토로라가 1996년 접히는 휴대전화 ‘스타텍’을 내놓았을 때나 애플이 2007년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 나타났던 열광적인 반응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 판도를 바꿀 만큼 소비자에게 어필할 차별화 포인트가 없어서다.

소비자들의 심드렁한 반응은 스마트폰 시장에 직격탄이 됐다. SA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출하량 기준)은 2015년 12.2%에서 2016년 3.3%, 2017년 1.3%로 뚝 떨어졌다. 올해는 0.5%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스마트폰 업체들로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 판도를 바꿀 ‘히든카드’, 폴더블폰

국내외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돌파구로 폴더블폰에 눈을 돌리고 있다. 폴더블폰이 직사각형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기존 스마트폰과는 하드웨어적으로 완전히 다른 만큼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폴더블 스마트폰이 태블릿PC 등 다른 정보기술(IT) 제품 시장을 흡수해 기존 스마트폰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을 움직이게 했다. 스마트폰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자사전, 내비게이션, MP3플레이어 등 다른 IT 제품을 흡수한 것처럼 폴더블폰은 큰 화면이 필요한 태블릿PC나 노트북까지 흡수해 IT 제품 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권명준 삼성증권 책임연구원은 “폴더블폰은 화면을 크게 늘릴 수 있는 만큼 e북이나 노트북 시장까지 잠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제품 외에도 화면 크기에 따라 추가적으로 여러 시장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시작된 물밑 경쟁

폴더블폰 개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선두는 삼성전자. 지난해 9월 ‘2018년 무선사업 로드맵’에 폴더블폰이 포함돼 있다고 발표하며 포문을 열었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한국과 미국 특허청에 접었다 펼 수 있는 디자인 이미지로 특허를 신청했다. 올 8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깨지지 않는 스마트폰용 패널을 개발해 미국 산업안전보건국 공인 시험기관에서 내구성과 견고성을 인증받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삼성SDI가 폴더블 스마트폰 핵심 소재인 광학용 투명접착필름(OCA)을 개발해 삼성전자에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IT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폴더블폰 제조 기술이 가장 앞서 있다고 보고 있다. 수년 전부터 폴더블 스마트폰 기술을 축적해 온 데다 삼성디스플레이나 삼성SDI 등 부품 계열사들과 수직 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있어 상용화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올 11월 7,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2018 삼성개발자콘퍼런스(SDC)’에서 폴더블폰 관련 주요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폴더블폰에 적용할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유도하기 위해 개발자들에게 구동 원리와 차별화 포인트를 미리 소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폴더블폰 시제품이 공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폴더블폰용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개발될수록 새로운 생태계와 시장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된 행사”라고 설명했다.

중국 화웨이는 강력한 ‘다크호스’이다. 화웨이는 리처드 유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0월 외신 인터뷰를 통해 “이미 폴더블폰 프로토타입 개발을 완료했다”며 올해 11월경 상용화 제품을 공개할 것임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상하이 연구개발(R&D)센터에서 폴더블폰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올해 초부터 폴더블 관련 기술을 보유한 중국 및 해외 부품·소재 기업과 비밀유지협약서(NDA)를 체결하고 제품을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화웨이는 또 내년 2분기(4∼6월)에 처음 선보일 5G용 스마트폰을 폴더블폰으로 만들겠다는 방침도 공개한 바 있다.

스마트폰의 강자 애플도 지난해 10월 폴더블 디스플레이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특허청에 ‘접을 수 있는 유연한 전자기기’ 기술 특허를 출원했다. 외신에 따르면 애플이 개발 중인 폴더블폰은 평상시 5.5인치 제품으로 사용하다가 펼치면 9.7인치 아이패드로 전환할 수 있는 제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레노버도 이달 중 폴더블폰 공개를 준비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최근 나왔다. 하지만 특정 부분만 휘어질 뿐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접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LG전자와 중국 ZTE도 폴더블폰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최초’ 타이틀 전쟁

국내외 IT 업계에서는 폴더블폰을 가장 먼저 선보일 업체로 삼성전자와 화웨이 중 한 곳을 꼽는다. 애플도 제품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협력업체에 대한 관련 부품 주문 시기를 감안할 때 2020년 이후 내놓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는 당초 완성도를 높인 뒤 제품을 내놓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을 감안하면 삼성보다 먼저 폴더블폰을 내놓을 업체가 전 세계에 없다는 분석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하지만 화웨이가 세계 최초 폴더블폰 출시 방침을 잇달아 언론에 흘리면서 고 사장이 공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견제구’를 잇달아 던지고 있다.

국내 IT 업계에서는 고 사장의 이 같은 움직임에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기술적 자신감이 있는 만큼 압도적 성능을 갖춘 ‘초격차’ 제품으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따낸 뒤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정공법’을 택했다는 해석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고 사장이 화웨이를 교란시키기 위해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보다 폴더블폰을 먼저 만들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화웨이를 역이용하려는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것이다. 화웨이가 삼성전자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완성도가 떨어지는 폴더블폰을 서둘러 내놓다가 내구성 등 제품 품질이 떨어지면 혹평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때 삼성전자가 완성도를 높인 초격차 제품을 선보이면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애플이 폴더블폰을 서둘러 내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디스플레이 내구성이 생명… 2년 이상 손상없어야 경쟁력▼

폴더블폰의 해결 과제


폴더블폰은 ‘인폴딩’과 ‘아웃폴딩’ ‘인앤드아웃폴딩’ 등 3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인폴딩은 과거 ‘폴더폰’처럼 접히는 안쪽 면에 디스플레이가 있는 형태다. 반대로 아웃폴딩은 밖으로 접히는 형태다. 인앤드아웃폴딩은 양쪽으로 접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인폴딩 방식이 기술 난도가 가장 낮아 제일 먼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더블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스플레이의 내구성이다. 고정형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기존 스마트폰은 떨어뜨리거나 부딪히지 않는 한 액정이 손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폴더블폰은 접었다 펴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외부에서 산소나 수분이 침투해 전극 불량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휘도(輝度·광원의 단위 면적당 밝기의 정도)가 떨어져 얼룩이 생길 수 있다. 또 기존 화면의 2배나 되는 큰 화면에다 최신 기능들을 대거 탑재하다 보면 배터리 발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폴더블폰 디스플레이의 내구성을 결정하는 것은 투명폴리이미드(CPI), PI바니시 등 기초 소재다. CPI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강도가 세면서도 수십만 회 접어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 PI바니시는 폴리이미드의 액체 형태로 이미 커브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이들 소재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의 유효 사용 기간으로 여기는 2년 안에 디스플레이가 손상되지 않는 내구성을 확보할 수 없다.

폴더블폰은 기존 스마트폰과는 완전히 다른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만큼 부품과 소재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관련 업계에서는 디스플레이 원가만 최소 300달러(약 33만7000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새로운 개념의 모바일 디바이스여서 안정적인 양산체제에 들어가기 위한 비용도 기존 스마트폰보다는 많이 든다.

폴더블폰 완제품 가격이 2000달러(약 224만 원)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근거이다. 최근 1500달러에 육박하는 고가 스마트폰이 나오기는 했지만 폴더블폰이 확연히 다른 기능을 보여주지 못하면 시장 진입 초기에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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