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문제 많은 상속·증여세 손볼 때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18-09-03 03:00 수정 2018-09-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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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대장성(한국의 기획재정부에 해당)은 전쟁비용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됐다. 소득세와 주세 등 기존 세금을 닥치는 대로 늘렸지만, 그래도 재원이 부족하자 이듬해인 1905년 상속세를 도입했다. 당초에는 임시로 도입한 제도였지만 러시아가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자 고정적인 세목(稅目)으로 격상시켰다. 한국에 상속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3년이다. 조선총독부가 도입 주체였으니 군국주의 일본의 제도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시작이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상속세 제도는 일본과 흡사한 점이 많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속세율이 높기로 세계 1위를 다툰다. 최고세율은 일본이 55%, 한국이 50%다. 하지만 한국은 대주주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최고세율이 65%까지 치솟기 때문에 난형난제다.

흔히 상속세와 관련해서는 혈연의식이 약하고 기부문화가 뿌리를 내린 서양에서는 조세저항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쉬운데 현실은 반대다. 영국의 경제전문 잡지 이코노미스트 2017년 11월 23일자에 따르면 영국인과 미국인들은 소득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상속세를 공평성이 가장 결여된 세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의회가 지난해 말 상속세를 대폭 삭감하는 법안을 가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서양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는 나라도 많다. 1970년대에는 캐나다와 호주가, 1980년대에는 뉴질랜드가, 2000년 이후에는 포르투갈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가 상속세를 없앴다.

세계에서 유독 높은 세율과 경직된 구조를 가진 상속세는 앞으로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 현장에서 과중한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매각이나 폐업을 고려하는 경영자가 적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가업 승계를 하면 상속세를 깎아 주는 제도를 1997년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지만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다. 여당 일각에서는 가업 승계에 대한 상속세 감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이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일자리 사정을 급속히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제조업은 이 분야에서 일자리가 1만 명 감소하면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 1만3700명이 연쇄적으로 줄어들게 만드는 파급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높은 세율과 함께 동전의 양면 관계인 상속세와 증여세의 구조도 문제다. 영국에서는 죽어서 물려주는 상속세보다 살아있을 때 물려주는 증여세의 부담이 훨씬 작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려주는 금액이 같으면 상속세나 증여세나 큰 차이가 없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고령자들이 자신의 사망 시점까지 재산을 꼭꼭 끌어안고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투자와 소비의 활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겨나게 된다.

일본에서는 치매환자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이 지난해 기준으로 143조 엔(약 1443조 원)에 이르러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또한 고령자들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젊은 범죄자들이 경찰에서 “나는 세대 간 부의 이전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황당한 궤변이지만 부(富)가 고령 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이전되지 않는 데 대한 젊은층의 반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측면에서 빠른 속도로 일본의 뒤를 쫓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상속·증여세제를 손질하지 않으면 한국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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