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소득, 표본 늘려 조사…‘양극화 심화’ 결과 나오자 與불만

세종=김준일기자 , 세종=최혜령기자

입력 2018-08-28 03:00 수정 2018-08-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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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통계청장 경질 논란 부른 ‘가계소득 통계’ 무슨 일이…

2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비서가 건넨 꽃을 받아 든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가계소득 통계 신뢰도로 경질된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한 심적 부담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는 이임식에서 “지난 1년 2개월 동안 큰 과오 없이 청장직을 수행했다.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고 뼈 있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날 오후 세종시 자택을 찾아간 본보 기자에게 황 전 청장은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나온 것이 아니지 않으냐”며 “한국개발연구원(KDI) 복직 준비로 시간이 없어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정리가 되면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가계소득 통계 오류로 경질?

황 전 청장 경질 논란에 대한 파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통계청은 각종 사회 경제 관련 통계를 생산해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그만큼 정부로부터 독립적이고 중립적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통계청장을 경질한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황 전 청장 경질 논란의 배경이 된 통계는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 발표다. 지난해 4분기(10∼12월) 가계실질소득이 9개 분기 만에 처음으로 증가한 이후 올해 1분기(1∼3월)와 2분기(4∼6월)에는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면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이 역대 최악의 소득 양극화로 이어졌다는 논란이 확산된 바로 그 통계다.

이 통계는 당초 작년 4분기를 끝으로 사라질 예정이었다. 통계청은 2005년부터 3년마다 조사 표본을 업데이트하며 가구 소득을 집계해왔다. 표본 규모는 8700∼9000가구 수준이다. 그러나 조사 응답률이 떨어지고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논란이 일면서 더 이상 이 조사를 하지 않기로 2016년 말 결정했다. 이에 따라 표본 가구 수도 작년에 5500가구로 줄였다. 그러나 여당은 지난해 11월 없던 예산을 책정하며 이 통계를 계속 유지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를 파악하기 위해서 가계소득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작년 말 표본 가구를 원상복구하기 위해 8000가구로 늘렸다. 이 과정에서 통계청은 관행대로 2015년 인구총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연령 비중, 도시별 인구 등을 반영해 표본을 결정했다. 인구총조사는 5년마다 실시되는데 2010년에 비해 고령화가 많이 진행돼 자연스럽게 70세 이상 고령층이 표본에 많이 반영됐다. 고령층은 경제활동 참가율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낮기 때문에 가계소득이 더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1, 2분기 가계소득이 발표된 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여당 일각에서는 통계청이 소득통계에서 저소득층 표본을 늘리는 ‘표본 오류’를 저질렀다며 교체가 필요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황 전 청장이 물러난 후 야당은 ‘문재인 정부가 통계를 문제 삼아 통계청장을 경질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논란과 관련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표본 오류로 이런 것(분배 격차 심화)이 생겼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며 통계청장에 대한 이런 비판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통계청 독립성 지켜줘야”

통계청장 교체 이후 통계청 직원들도 사기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의 결정으로 가계소득 조사를 부활시켰고, 통계의 정확도를 위해 표본도 늘렸더니 엉뚱하게 화살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한 직원은 “통계를 조작하라는 말이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현재 가계소득 표본이 최근의 인구구조를 잘 반영한 것이며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공통적인 설명이다.

전직 통계청장들은 통계 논란이 있은 뒤 통계청장을 교체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전 통계청장)는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선진국은 통계청장의 임기가 7년”이라며 “통계청이 소득통계만 하는 곳이 아니고 물가통계, 통계 품질 등을 관장하는 등 매우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통계청장)는 “(표본 오류 논란에 대해) 표본을 추리는 데 통계청만큼 정통한 곳이 없고, 왜곡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우리 통계청장은 임기가 없다 보니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기상청도 논란

한편 통계청과 함께 취임 13개월 만에 수장이 교체된 기상청도 크게 동요하고 있다. 기상청 출신 첫 청장이어서 내부 직원들의 신임이 두터웠던 만큼 갑작스러운 교체에 직원들도 당황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지난주 19호 태풍 ‘솔릭’ 대비를 지휘하는 등 의욕적으로 업무를 해온 남재철 전 청장은 24일 오후에야 청와대로부터 교체 사실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 전 청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넘은 만큼 기상청의 혁신을 이끌어나갈 외부인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교체한 것으로 안다”며 “특별한 이유가 있겠나. 내 부족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최혜령 / 김철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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