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자기 확신에 대한 ‘위험한 확신’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8-08-22 03:00:00 수정 2018-08-2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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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결정에 반복되는 오류
이성보다 감정 신념에 좌우되는 인간본성 비합리적 사고체계 탓
복기를 강조한 ‘아마 4단’ 대통령
‘확신에 대한 확신’의 유혹 떨치고 고용재난 맞닥뜨린 과정 복기하길


고미석 논설위원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 준다.’ 지금은 야당 국회의원인 바둑기사 조훈현 9단이 3년 전 펴낸 책에서 쓴 말이다. 한판 바둑을 끝내고 되돌아 다시 검토해 보는 복기(復棋)의 이점에 대해서다. 이런 대목도 나온다. ‘실패를 빨리 극복하는 것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아예 부인해서는 안 된다.’

‘아마바둑 4단’으로 기력을 공개한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보다 복기의 필요성을 잘 알고 또 실행에 옮겼다. 예전에 했던 바둑 관련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바둑의 좋은 점은) 복기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되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복기를 하다 보면 자신이 왜 그런 착점을 했는지, 더 나은 대안은 없었는지 반성할 수 있고, 이런 반성이 쌓이다 보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속내를 대변하듯 지난 대선의 찬조연설에서 이세돌 9단도 힘주어 말했다. “문재인 후보는 4년 전 선거의 복기를 정말 잘한 것으로 보인다”고. 그 복기 덕이었는지 ‘재수(再修)’는 압승을 낳았다.

요즘도 대통령은 복기를 잘 실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정 전반에 걸쳐 삐걱대는 소음이 속출하는데 정책의 오류나 편향을 되짚을 시점을 마냥 흘려보내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더니 막상 고용재난 국면에 대처하는 자세는 어정쩡하다. 그제 문 대통령은 고용정책에 대해 “충분하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정책기조의 변화 대신 ‘팀워크’를 주문했다. ‘더 기다려 달라’는 대통령정책실장에 ‘4대강 사업 탓’을 들먹인 여당, 그 무책임한 태도는 금메달감이다.

한번 정한 노선을 쉽사리 바꾸지 못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속한다. 최근 출간된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에 의하면 인간이 온전히 합리적, 이성적이라는 전제를 일거에 허무는 연구는 과학적으로 논증돼 왔고, 우리 눈앞에 숱한 사회현상으로 나타나 있다. 지금 상황을 바꿈으로써 벌어질 손실과 고통보다는, 차라리 현 상태를 유지함에 따르는 손해와 고통이 더 견딜 만하다는 관성적 태도. 그래서 재앙을 피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누군가 아무 조치를 하지 않고, 결국 재앙이 닥쳤을 때 당사자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습관적 고질이, 100여 년 전 리더와 국민과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역사교과서상에 잘 그려져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항상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자기에게 이익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인간의 사고나 행동이 감정 직감 그리고 소위 신념이라고 하는 ‘이상한 속임수’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탓이라고 한다. 나라의 앞날을 좌지우지하는 정책의 오류에도 이런 비합리성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복기의 교훈은 실수에서 뭔가 배울 때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틀렸음을 깨달은 그 순간이 미련을 버릴 타이밍이다. 악수(惡手)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수로 타개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수순이다. 그것이 안 되는 것은 실수를 인정하지 못해서다. 그래서 악수가 악수를 부른다. 끝없는 변명과 자기기만이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우리가 역사책에서 지겹도록 보는 정권의 흥망이다.

리더가 자신의 예측 능력이나 합리적 판단을 과도하게 확신할 경우 의사결정이 왜곡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뭐가 나쁜가라는 식의 시시비비가 아니라, 그 정책이 실질적으로 누구한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먼저 따지는 것이 실사구시로 가는 길일 터다. 문 대통령은 앞서 언급한 바둑 인터뷰에서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면서 바둑과 정치의 닮은꼴을 강조했다. 이어 고수다운 명쾌한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은 바둑판과 정치판에서 불변의 진리다. 정치를 할 때도 항상 소탐대실의 교훈을 명심하면서 자신을 비운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약 준수와 경제 살리기, 임기 초반 정책 허점을 인정하는 것과 참담한 임기 말 성적표를 받는 것. 과연 어느 쪽이 ‘소탐’이고 ‘대실’인가. 진짜 지켜야 할 대통령의 약속은 어떤 것인가. 바둑 고수라면 모를 리 없다. 어떡하든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흘려보내선 안 된다. 자기 확신에 대한 확신의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개인의 영예와 나라의 번영을 위해.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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