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가지가지 별난 맛, 가지의 계절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입력 2018-08-09 03:00 수정 2018-08-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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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각의 ‘마파가지밥’. 다이어리알 제공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가지를 좋아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밥솥 안에 큰 대접을 얹는데 그 안에 가지가 들어 있었다. 밥을 짓는 센 김으로 익혀진 가지는 그냥 무른 정도가 아니라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터질 듯 흐물거렸다. 엄마는 김이 채 빠지지도 않은 가지를 젓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듯 찢었다. 칼을 댈 필요가 없었다. 부들부들한 가지는 그냥 세로로 길게 쪼개져 내렸다. 가지에 간장, 파, 마늘, 깨소금 등 갖은 양념을 하고 마지막으로 식초를 넣어 조물조물 무친 가지가 밥상에 올라왔다. 누가 찐 가지에 초를 넣을 생각을 했을까? 참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그런데 막상 엄마의 가지초무침이 반찬인 날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가지무침을 먹고 있자면 마치 할머니가 된 기분이었다. 흐물흐물하고 미끄덩거리는 가지 감촉을 음미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어른이 되었고 마침 외식 연구를 업으로 삼다 보니 다양한 가지음식을 접할 기회도 늘어났다. 가지음식이 모두 흐물거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두툼히 길게 구운 스테이크형 가지, 반죽을 입혀 튀긴 다양한 가지, 빵에 발라 먹도록 형체가 없어진 프랑스식 가지딥….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가지를 즐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지는 고기 또는 기름과도 잘 어울리고 매운 양념이나 독특한 향신료와도 두루두루 조화를 이룬다.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한 번이라도 더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싶은 친구들은 대개 가지 같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난 랍스터도 아니고 비싼 ‘투뿔’ 한우도 아닌,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가지같이 존재를 뽐내지 않는 친구들이다.

그동안 가지는 주연이 아니고 어느 요리에든 부속 재료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작년 여주지역 가지협회 회장을 만난 뒤부터 가지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그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는 여주 가지가 다 팔린 뒤에야 다른 지역 가지가 팔리기 시작한다”며 여주 가지의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회장은 가지의 존재감을 만끽할 수 있는 음식 개발을 요청했다. 안토시아닌의 보랏빛 색소와 다량의 수분, 특유의 섬유질 등의 물성을 연구하니 어릴 적 가지무침을 넘어선 가지피자, 스모크가지잼, 건가지비빔밥 등 다양한 요리들이 나왔다. 이제 가지는 더 이상 조연이 아니었다. 있는 둥 마는 둥 하지만 점점 더 소중해지는 친구의 존재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여주 가지는 ‘금보라’로 불린다.

외식에서는 기름과 잘 어울리는 가지의 특성을 활용하여 다양한 소스 매칭을 하는 곳이 많다. 두반장이 들어간 매콤한 마파가지밥, 일본식 된장인 미소로 볶은 미소가지덮밥, 새우 살이 가운데 들어간 가지새우튀김 등 화룡점정 역할을 하는 ‘가지’의 쓰임새가 다양해지며 그 요리의 종류는 끝이 없을 정도다.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 대표


○ 대한각,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3길 14, 마파가지밥 8000원

○ 내일식당,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22길 25, 미소가지덮밥 8000원

○ 수불,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21, 새우가지튀김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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