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 속 수출도 흔들리나… 속타는 원전업계

이새샘 기자

입력 2018-08-01 03:00 수정 2018-08-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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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英원전 우선협상 지위 상실
英당국 새조건 내세워 상황 급변
탈원전 정책과 직접 관련 없지만 업계 ‘수출 절벽’ 현실화 우려
일각 “협상 조건 불리하지 않아… 한전 수주 가능성 여전히 높아”


한국전력이 영국 무어사이드 프로젝트 사업권 인수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잃은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사상 두 번째 한국 원전 수출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한전의 수주 가능성이 여전히 작지 않고 영국 정부가 내세운 새로운 협상 조건이 종전 조건보다 유리한 만큼 낙담할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무어사이드 프로젝트 사업자인 ‘뉴젠(NuGen)’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에서 우선협상자 지위를 상실했다고 일본 도시바로부터 지난달 25일 통보받았다. 일본 도시바는 뉴젠의 소유주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중국 등 경쟁사를 제치고 무어사이드 프로젝트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당시만 해도 정부와 한전은 상반기 중에 사업권 인수를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작 협상을 시작한 뒤에는 계약이 계속 지연됐다.

이는 무어사이드 프로젝트가 한전이 거의 모든 위험을 떠안는 발전차액정산 제도(CfD)를 채택해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2009년 한국 사상 첫 원전 수출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사업은 UAE 정부가 사업을 발주해 수주사는 자금 걱정 없이 공사만 하면 됐다. 반면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는 한전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원전을 건설하고, 이후 운영까지 맡아 하면서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판매해 수익을 올려야 한다.

이런 가운데 올 6월 정부가 민간 사업자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규제자산기반(RAB·Regulated Asset Base) 방식을 원전 건설 사업에 적용하겠다고 영국 정부가 밝히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RAB는 영국에서 각종 토목 사업에 적용됐지만 원전 건설에는 적용된 적이 없다. 한국이 이 사업 방식의 수익성과 리스크 분석에 시간이 걸리는 사이 도시바 측이 운영비 증가 등을 이유로 새로운 협상대상자를 찾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번 우선협상자 해지는 한국의 탈원전 정책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원전 수출 협상이 결렬되면 한국 원전업계는 안에서는 탈원전 논란이 심해지고 밖으로는 ‘수출 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까지 전면 백지화하면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해외 수출 시장까지 막힌다면 한국 원자력계는 고사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영국 정부가 내세운 사업 조건이 한국에 불리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부는 “도시바 측에서 한전이 새로운 사업 방식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한전과 공동 타당성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동 조사를 할 만큼 한전이 여전히 협상에서는 가장 앞서 있다는 것이다.

한 원자력계 관계자는 “RAB는 영국 정부가 출자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수익성을 보장해줘 대형 토목 사업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방식”이라며 “도시바 측이 한전에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이 성사될 것을 우려해 우선협상자 해제를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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