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갈림길에 선 삼성바이오

동아일보

입력 2018-07-09 03:00 수정 2018-07-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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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바이오제약 산업에는 ‘이룸(Eroom)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9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개발비가 급증하다 보니 바이오신약의 가격은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미국에서 관절염치료제 엔브렐의 1년 약값은 2000만 원, C형간염치료제 소발디의 12주 치료프로그램 약값은 9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룸의 법칙이 지배하는 신약 시장은, 축적된 브랜드력이 없는 한국 기업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하지만 이 법칙이 거꾸로 한국과 같은 후발 주자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주는 측면이 있다. 바이오신약이 비싸다 보니 가격이 싼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시장이 커지고, 분업화가 진행되면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시장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 시장은 우수한 인력과 정밀한 공정기술이 핵심 경쟁력이어서 반도체나 화학 업종처럼 한국 기업들의 강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다.

삼성은 국내 대기업 중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비교적 일찍 간파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왔다.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CMO에 뛰어들었고,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의 바이오젠 합작 형식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해 바이오시밀러에 진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시험가동 중인 3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생산 규모에서 스위스의 론자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하게 된다. 삼성바이오의 미래에, 시장이 거는 기대도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은 지난주 종가 기준 27조1277억 원으로 삼성물산이나 삼성생명을 제치고 그룹 내 2위다.

삼성이 어렵게 개척한 바이오 사업은 현재 비즈니스 외적인 곳에서 암초를 만나 성패의 기로에 서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의 콜옵션(특정 조건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행사 가능성을 이유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데 대해 금융감독원이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에 고의적인 분식회계라며 제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고의라는 결론이 나면 최악의 경우 상장 폐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금융위는 고의가 아닌 과실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이 적정 의견을 냈고, 한국공인회계사회도 2016년 10월 감리를 했으나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 더구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은, 바이오젠이 지난달 실제로 콜옵션을 행사하면서 일단락이 됐다.

그럼에도 금융위가 이례적으로 시간을 끌면서 고심하는 이유는 일부 시민단체의 압박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논란은 현 정부 들어 권력의 정점에 선 참여연대가 주도해 왔고, 일부 시민단체가 “감리위원 중에서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표결하거나 상장 폐지에 준하는 징계 요구를 하지 않는 감리위원은 처벌해 달라”고 검찰에 고발장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전방위적인 ‘재벌 때리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금융위가 느낄 압박감은 쉽게 짐작이 간다.

하지만 금융위는 자신들의 결정이 삼성뿐 아니라 한국 바이오 산업 전체의 신뢰성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고급 일자리의 보고(寶庫)이자, 반도체를 능가하는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바이오 산업이 정치 외풍에 휩쓸려 싹도 틔우지 못하고 시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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