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곡학아통
김순덕 논설주간
입력 2018-07-02 03:00 수정 2018-07-02 03:00
통계 조작해 대통령 속인 참모… 曲學阿世 뺨치는 국정농단일 것
그러고도 문책인사 아니라면 과연 ‘책임정부’라 할 수 있나
대통령을 ‘도구’로 택했던 운동권… 역사가 반복될까 두렵다
마침 홍제동 옛집 가는 길에 셀프 주유소가 눈에 띄었다면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셀프 주유기를 들여놓은 건 아니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집 근처 편의점을 찾아선 요즘 정말 알바생에게 인건비 주기도 힘든지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마침내 깨달았기를 바란다. 어떤 장관은 재벌 금고에 800조 원 이상 들어 있는데 서민 지갑엔 돈이 안 돌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편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이 정책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라는 사실을.
공간은 사고를 지배한다. 대선 후보 때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시작은 국민과 함께하는 청와대”라며 광화문 집무를 약속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공격했던 청와대에 종일 들어앉고 보니 이젠 대통령 자신이 제왕적, 아니 ‘운동권 청와대 권력’에 포획된 게 아닌 가 싶다.
5월 28일 월요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이 먼저 “하위 20%의 가계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운을 뗀 것이 한 예다. 빠릿빠릿한 청와대라면 이 말은 임종석 비서실장이든 누구든 참모진이 먼저 했어야 옳다. 5월 25일자 신문마다 ‘소득격차 역대 최악’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정책 점검 아닌 통계를 손봤다. 사흘 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대통령 발언은 그래서 나왔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한다)를 넘어 대통령까지 속이려 한 ‘곡학아통(曲學阿統)’이다.
지난주 홍장표 경질 발표에 나는 당연히 경제성과 미비는 물론 국책연구기관까지 동원해 감히 국사(國事)를 사사화(私事化)한 공직자를 문책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장하성 정책실장은 “정부의 정체성과 방향을 흔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다”며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속도를 높일 태세를 밝혔다.
그러고 보니 좌파는 잘못을 인정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이념이 먼저다. 이념에 안 맞으면 누군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엉뚱한 사람의 손발을 자르고, 공범들은 조용히 입을 다문다. 이념 다음은 능력보다 지연(地緣) 학연(學緣)이다. 특히 부르주아 경제학계에선 얼마간 능력주의가 인정되지만 진보 경제학계는 영남 연고가 더 중요하다고 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일갈한 바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성장도 절로 되는 세상은 장하성이 원하는 ‘정의로운 경제’가 분명하지만 현실에서 성공한 국가는 없다. 홍장표 역시 논문에서나 실증 분석해 그럴 것이라는 ‘함의’를 얻어냈을 뿐이다. 오히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 때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임금 인상을 강요하는 바람에 해고가 늘고 대공황이 심해졌다는 실례(實例)와 연구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달 ‘대통령 5년 임기 동안 54%의 최저임금 인상은 OECD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생산성 증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의 국제적인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를 신설해 홍장표에게 위원장을 맡겼다니 과연 대통령이 결정한 인사가 맞나 싶다. ‘운동권 청와대’가 그들만의 집단 문화로 대통령을 에워싸고는 시나리오에 따라 몰아가는 기세가 역력해서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자신을 ‘도구’로 선택한 청와대 사람들에게 “나를 놓아 달라”고 했다. 그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개혁세력이 일거에 청와대에 들어가 주류세력 교체든, 체제 교체든 신속히 해내자고 전략을 짰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그러고도 문책인사 아니라면 과연 ‘책임정부’라 할 수 있나
대통령을 ‘도구’로 택했던 운동권… 역사가 반복될까 두렵다
김순덕 논설주간
이것은 순전히 상상이다.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은 아프지 않았다. 경호원 한 명만 데리고 청와대를 빠져나갔을 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듯, 감기몸살 핑계라도 대지 않으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서실, 정책실, 국가안보실 현안보고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서다. 마침 홍제동 옛집 가는 길에 셀프 주유소가 눈에 띄었다면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셀프 주유기를 들여놓은 건 아니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집 근처 편의점을 찾아선 요즘 정말 알바생에게 인건비 주기도 힘든지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을 것 같다.
그리하여 마침내 깨달았기를 바란다. 어떤 장관은 재벌 금고에 800조 원 이상 들어 있는데 서민 지갑엔 돈이 안 돌아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편다고 홍보하지만 정작 이 정책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은 영세 자영업자라는 사실을.
공간은 사고를 지배한다. 대선 후보 때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시작은 국민과 함께하는 청와대”라며 광화문 집무를 약속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의 상징이라고 공격했던 청와대에 종일 들어앉고 보니 이젠 대통령 자신이 제왕적, 아니 ‘운동권 청와대 권력’에 포획된 게 아닌 가 싶다.
5월 28일 월요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이 먼저 “하위 20%의 가계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운을 뗀 것이 한 예다. 빠릿빠릿한 청와대라면 이 말은 임종석 비서실장이든 누구든 참모진이 먼저 했어야 옳다. 5월 25일자 신문마다 ‘소득격차 역대 최악’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정책 점검 아닌 통계를 손봤다. 사흘 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대통령 발언은 그래서 나왔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한다)를 넘어 대통령까지 속이려 한 ‘곡학아통(曲學阿統)’이다.
지난주 홍장표 경질 발표에 나는 당연히 경제성과 미비는 물론 국책연구기관까지 동원해 감히 국사(國事)를 사사화(私事化)한 공직자를 문책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장하성 정책실장은 “정부의 정체성과 방향을 흔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다”며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속도를 높일 태세를 밝혔다.
그러고 보니 좌파는 잘못을 인정한 적이 거의 없다. 언제나 이념이 먼저다. 이념에 안 맞으면 누군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엉뚱한 사람의 손발을 자르고, 공범들은 조용히 입을 다문다. 이념 다음은 능력보다 지연(地緣) 학연(學緣)이다. 특히 부르주아 경제학계에선 얼마간 능력주의가 인정되지만 진보 경제학계는 영남 연고가 더 중요하다고 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는 일갈한 바 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성장도 절로 되는 세상은 장하성이 원하는 ‘정의로운 경제’가 분명하지만 현실에서 성공한 국가는 없다. 홍장표 역시 논문에서나 실증 분석해 그럴 것이라는 ‘함의’를 얻어냈을 뿐이다. 오히려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 때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임금 인상을 강요하는 바람에 해고가 늘고 대공황이 심해졌다는 실례(實例)와 연구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달 ‘대통령 5년 임기 동안 54%의 최저임금 인상은 OECD에서 유례가 없는 수준’이라며 ‘생산성 증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의 국제적인 경쟁력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회를 신설해 홍장표에게 위원장을 맡겼다니 과연 대통령이 결정한 인사가 맞나 싶다. ‘운동권 청와대’가 그들만의 집단 문화로 대통령을 에워싸고는 시나리오에 따라 몰아가는 기세가 역력해서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자신을 ‘도구’로 선택한 청와대 사람들에게 “나를 놓아 달라”고 했다. 그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개혁세력이 일거에 청와대에 들어가 주류세력 교체든, 체제 교체든 신속히 해내자고 전략을 짰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만에 하나, 이번 청와대도 문 대통령을 도구로 여길 경우 그들만의 이념이나 정체성을 위해 국민은 물론 대통령까지 또 속이는 일이 벌어질까 우려스럽다. 건강을 회복한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믿고 싶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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