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몇달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영세업자 긴급지원’ 취지 무색

최혜령 기자

입력 2018-06-27 03:00 수정 2018-06-27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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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안정자금 곳곳에 구멍

《 일자리 안정자금이 도입된 지 6개월이 됐는데도 집행률이 20%에 그친 것은 실제 지급까지 2∼3개월 남짓 걸리는 ‘늑장 행정’ 때문이다. 자영업자와 영세 중소기업들은 월급을 줄 돈이 없어서 긴급하게 정부 돈을 신청하는 것인데 신청부터 지급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 걸리는 구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 등 관련 업무를 맡은 4대 보험공단의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 지급 지연으로 긴급 지원 취지 퇴색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일자리 안정자금에 관한 글이 200건 이상 올라와 있다. 이 글의 상당수는 “자금을 신청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아무 통보 없이 지급을 못 받고 있다”는 내용이다. 4대 보험 공단에서 신청률을 높이려고 계속 연락해서 신청하게 해놓고 막상 돈은 내주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급 지연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부정 수급을 막기 위한 심사에 기본적으로 3주가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추진단 관계자는 “제출 서류가 미흡하면 사업주에게 보완을 요청하고 다시 처리 기한을 연장하기도 해 기간이 늘어난다”면서 “연초 업무 미숙으로 지연된 점도 있지만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하반기로 갈수록 집행 속도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반면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4대 보험 공단의 한 관계자는 “여러 개 공단이 한꺼번에 신청을 받으면서 중복 신청 건수가 4건 중 1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복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제한된 인력으로 업무를 처리하려다 보니 지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직원들이 단순히 접수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나가서 신청을 독려해야 하기 때문에 처리가 늦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신청된 자금지원 요청 서류도 처리하지 못한 채 정책 홍보에 내몰리면서 집행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 부정 수급까지 겹쳐 재정 낭비 논란
적발 건수가 많지는 않지만 부정 수급 사례도 종종 나온다. 일자리 안정자금 추진단에 따르면 허위 신고나 인원 쪼개기 등으로 부정 수급한 의혹을 받아 정부가 조사 중인 사업장은 11개에 이른다. 추진단은 “온라인으로 제보받은 것으로 대부분 영세한 사업장”이라면서 “근로복지공단 부정수급 전담팀이 의심사업장을 중심으로 모니터링 중이며 현장지도와 점검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류 미비 등으로 아예 지급이 반려된 건수도 이달 15일 기준으로 7만1293건에 달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추진단은 “대개 10일 정도 여유를 두고 서류 보완을 요청하지만 사업주와 아예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 반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달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올해 최대 8만4000명의 고용 감소를 가져올 수 있지만 4월까지 그만큼의 고용 감소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일자리 안정자금 덕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실제로 지급된 액수가 적어 고용 충격을 완화하지 못했고 향후 고용 감소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보고서가 작성된 이후 발표된 5월 고용동향에서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수 증가가 7만2000명에 그쳤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보고서는 일자리 안정자금의 부작용도 경고했다. 보고서는 “일자리 안정자금 때문에 고용 감소를 줄인 것이라면 앞으로 지원 규모가 최저임금 인상 폭에 비례해 확대돼야 한다”면서 “자금 지원이 확대되면 (수급 기준인 월 임금) 190만 원이 근로자 임금의 상한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월 보수가 190만 원 미만인 경우에 한해 지원한다. 일자리 안정자금을 받으려고 보수를 올리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 안정자금의 연장이 벌써부터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7월 중 국회에 일자리 안정자금 보완책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회에 제출하는 보완책에는 △내년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여부와 수준 △최저임금위에서 결정할 내년도 인상 내용 △임금 직접 지원 방식을 간접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문제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집행률이 저조한 데다 적은 숫자지만 부정 수급 사례가 발견된 상황에서 지원이 연장되면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금 지원이 고용 감소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만큼 최저임금 인상 조절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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