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가족경영 장점은 빠른 의사결정… 지역 고용안정에 큰 역할”

송평인 기자

입력 2018-06-21 03:00 수정 2018-06-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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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스는 처지고 독일은 앞서갔나]<4> 4남매 공동경영하는 中企 레너사

독일 하일브론에 위치한 레너사 공장에서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이 회사 직원 대부분은 인근 지역 사람들이다. 독일 중소기업은 지역 고용안정에 큰 역할을 한다. 이 기업은 대부분의 독일 중소기업처럼 가족기업으로 운영된다. 왼쪽 아래 사진은 레너사 공동경영인을 맡고 있는 레너가 4남매 마르틴, 유타, 카린, 울리히다. 레너사 제공
독일의 중소기업은 375만 개에 이르고 전체 고용시장의 65.9%를 차지한다. 이들 중소기업 중 상당수는 높은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또 대부분은 가족기업의 형태로 운영된다. 가족기업의 가장 큰 장점은 국내 고용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도 사업체를 해외로 이전하기보다는 국내에 두려 하고 경영자가 장기적인 명성 유지를 위해 지역공동체에 화합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독일 남서부 슈투트가르트 인근 하일브론에 위치한 펌프 및 필터 제조업체 레너(Renner)사도 그런 기업이다. 직원은 60명에 불과하지만 이 업체가 제조하는 펌프 및 필터는 반도체 PCB, 태양광 전지판 등 약품이 사용되는 모든 생산 공정에 쓰인다. 주요 고객은 미국의 물텍(MULTEK) 퍼스트솔라 다우케미컬, 한국의 삼성 LG, 독일의 BASF 등이다. 독일 가족 중소기업의 전형인 레너사를 공동경영하고 있는 4남매를 인터뷰했다.



―중소기업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장이 모든 분야에 관여하기 때문에 결정이 빠르고 융통성 있게 이뤄진다. 중소기업이 다임러벤츠 같은 대기업과 똑같은 연봉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회사로부터 20∼30km 내에 사는 사람들을 채용하기 때문에 지역 고용에 크게 이바지한다. 근로자들로서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는 대기업 근로자와 달리 다양한 일을 다루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직원은 몇 명인가.

“대학 학위를 가진 엔지니어 8명을 포함해 마이스터의 일종인 테크니커(Techniker)와 메커니커(Mechaniker) 등 30명이 직접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직업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도 7명이 따로 있다. 이들은 3년간 직업교육을 받는다. 우리는 이 중 80%를 채용한다.”


―경영은 누가 맡고 있나.

“아버지가 낳은 우리 네 자녀가 공동경영인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장녀 유타(58)가 마케팅, 장남 마르틴(56)이 연구개발(R&D), 차남 울리히(54)가 생산기술, 차녀 카린(48)이 생산설계 담당으로 구별돼 있긴 하다. 그러나 영업은 다 같이 하고 중요한 결정도 분야를 막론하고 4명이 공동으로 한다. 아버지가 장녀 유타에서 한 표를 더 주긴 하지만 유타는 한 번도 추가적인 한 표를 행사해 본 적이 없다.”


―지분과 이익 배분은 어떻게 하나.

“4명이 회사에 갖고 있는 지분은 25%씩으로 똑같다. 월급도 똑같다. 회사 이익은 배분하지 않고 회사에 그대로 남겨 두고 R&D 등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투자한다.”

인터뷰 통역을 해준 임효석 세나(SENA)인터내셔널 사장은 도르트문트공대를 나온 독일 교포로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 그가 양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 이익을 기업주가 가져가지 않고 회사에 남겨 투자한다는 점이 독일 중소기업과 한국 중소기업의 차이”라고 강조했다.


―자녀들이 모두 다 회사를 이어받는 게 전형적인가.

“4명이 다 회사를 이어받는 건 전형적이지 않지만 독일의 가족 중소기업은 대개 1, 2명의 자녀가 이어받는다. 우리 남매는 학교에 다닐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회사 일을 해왔다. 일반 종업원이 일하는 하루 8시간보다 더 많이 일했고 지금도 더 많이 일하고 있다.”

레너사를 방문한 날은 일요일과 국경일인 화요일 사이에 낀 월요일이었다. 독일의 많은 근로자들이 이런 날은 휴가를 내고 쉬는데도 공동경영인 남매들은 모두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회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전문 경영인을 고용하는 건 생각해 보지 않았나.

“전문 경영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 사람이 현 단계에서 회사의 방향을 우리만큼 잘 이해하리하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세대에도 가족 기업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자식 세대는 우리보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직장 근로자로서 주 35시간 혹은 40시간만 일하고 쉬려고 한다.”


―독일은 프랑스 같은 나라에 비해 기업에 대한 상속세가 낮다고 들었다.

“회사를 판다면 상속세가 높다. 다만 회사를 계속 유지하고 매출이나 이익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고용자의 수를 유지하는 한 상속세가 높지 않다. 그러나 근래 들어 정부가 점차 상속세를 높여가고 있어 중소기업 계승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독일은 해고하기 어려운 나라로 알고 있는데….

“정규직 직원은 6개월의 테스트 기간에는 해고할 수 있지만 6개월 이후 채용하면 해고하기 어렵다. 해고당한 직원이 해고 사유에 반발해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법정이 노동자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창립 이후 47년이 지난 지금까지 2명을 해고한 적이 있다.”


―직원이 나이가 들면 임금을 낮출 수 있나.

“독일은 연장자로 갈수록 연봉이 늘어나는 시스템이다. 독일에서 임금 하향 조정은 법원에 갈 수 있어 불가능하다. 게다가 연장자들은 일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독일 근로자의 정년이 67세로 늘었지만 몇 년 전에 4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63세에 은퇴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그 법에 따라 우리 회사에서도 67세까지 더 일할 수 있었는데 63세 나이로 은퇴한 직원이 3명이 있었다. 그때 우리 모두 크게 아쉬워했다.”

슈투트가르트=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 취재지원 사업 선정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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