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 최시형… 36년 도피생활 중에도 천도교 키워

김갑식 전문기자

입력 2018-06-04 03:00 수정 2018-06-04 09:42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순도 120주년 천덕산서 참례식… 이정희 교령, 선구적 생명관 기려

“가정에 비유하면 수운 대신사님(최제우)은 아버지, 해월 최시형 선생은 기틀을 잡은 어머니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해월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천도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경기 여주시 금사면 천덕산에 있는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1827∼1898)의 묘소에서 2일 만난 천도교 최고 지도자 이정희 교령(사진)의 말이다. 이날은 해월 순도(殉道·도의를 위해 목숨을 바침) 120주년 기념일로, 묘소 참례식에는 이 교령과 박남수 전 교령을 비롯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2일 해월 최시형의 순도 120주년 기념식에는 이정희 천도교 교령을 포함해 300여 명이 참석했다. 1898년 한성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한 해월의 시신은 서울 송파를 거쳐 당시 인적이 없던 경기 여주시 천덕산 기슭에 안장됐다. 여주=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해월의 묘소가 이 산의 가파른 기슭에 위치한 것은 동학이 짊어져야 했던 민초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863년 36세의 최시형은 수운으로부터 해월이라는 도호를 받고, 동학의 2대 교주가 된다. 동학은 1905년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된다.

해월의 일생은 언제 위태로움을 맞을지 모르는 삶이었다. 동학이 불법화된 가운데 그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무려 36년간 삼남(三南) 일대를 돌며 도피 생활을 했다. 해월의 족적이 있는 장소만 200여 곳에 이른다.

1일 찾은 강원 영월군 중동면 직동2리 돌배마을에도 그 행적이 담긴 유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해월이 ‘인시천(人是天)하니 사인여천(事人如天)하라’는 대인접물(待人接物)에 관한 사상을 펼쳤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정숙 사회문화관장은 “그 사상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다른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만물로 확장됐다”며 “‘아이를 때리지 말라’ ‘여성을 귀하게 여기라’ 등 140여 년 전에 평등한 세상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최보따리’라는 별명은 그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날 찾은 강원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송골 입구에는 ‘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문구의 비가 있었다. 그 보따리에는 수운의 사상과 동학 발전의 지혜를 담은 해월의 글이 있었고, 이는 경전 편찬으로 이어진다.

해월은 도피 중에도 교세를 확장해 동학은 1890년대에는 경상·전라·충청 삼남 지방을 거의 포괄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 사이 교조신원운동에 이어 1894년 동학혁명이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자 동학은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된다.

해월은 1898년 4월 5일 원주 송골에서 관헌에게 체포된 뒤 6월 2일 한성(경성)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도한다. 시신은 형장 뒤뜰에 사흘간 방치된 뒤 광희문 밖에 묻혔다. 동학교도들이 시신을 찾아 송파의 산에 옮겼다 다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천덕산 기슭에 안장했다.

이 교령은 “해월 선생의 사상은 선구적인 생명관”이라며 “경북 경주의 생가터를 복원하고 해월의 사상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여주·영월=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