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원님이 지운 트윗,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김준일기자 , 조건희기자

입력 2012-11-10 03:00 수정 2018-05-2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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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올렸다 삭제한 2134건 폴리트웁스 사이트로 분석

저는 올여름에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엄청 바쁘네요. 눈코 뜰 새 없어요. ㅠㅠ 한국 정치인들 때문이에요. -_-^

참 제 소개부터 해야죠. 제 이름은 ‘폴리트웁스(Politwoops)’입니다. 정치(Politics), 트윗(Tweet), 탄식을 뜻하는 영어 감탄사 웁스(oops)를 합친 말이에요. 저는 정치인이 썼다 지운 트윗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아 영구히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합니다. 네덜란드의 비영리재단 ‘오픈스테이트’에서 태어났어요. 한국에서 제 주소는 www.politwoops.com/g/korea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미국 영국 등 18개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서 올해엔 미국 타임 선정 ‘50대 웹사이트’로 꼽혔어요.

제가 한국에도 보금자리를 틀게 된 건 동아일보 덕이에요. 동아일보가 선거를 앞두고 무책임한 비방 글을 올리는 정치인을 감시하자며 저를 7월 21일 한국으로 초대했습니다. 남몰래 4개월간 한국 정치인들의 트윗을 2000개 넘게 모았고 오늘 드디어 여러분께 모습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사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별로 할 일이 없었어요. 잘못된 트윗을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공인의 공적 발언으로 간주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거든요. 트위터를 유권자와의 공식적인 대화 창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선진국 정치인들은 글을 올릴 때 무척 신중해요.

그런데 한국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팔로어를 수천 명씩 둔 정치인들이 왜 그리 자기 말에 책임을 안 지는지…. ‘지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이없는 사례를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맛보기 하나 보실래요?

지난달 3일 민주통합당 이석현 의원의 트위터에 ‘4·11총선 등에 사용된 전자개표기는 조작이 가능한 기계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모든 선거가 부정 선거’라는 독백이 담긴 동영상 링크가 올라왔어요. 이 의원은 여기에 “정말이면 충격! 이 분야 전문가는 의견 주시길”이라고 덧붙여 리트윗(RT·자신이 본 트윗을 타인에게 보라고 추천하는 것)했고요. 이 트윗은 이 의원의 팔로어 3만6000여 명에게 순식간에 퍼졌어요.

이 동영상은 2010년 대구 수성구청장 선거 당시 촬영된 건데요, 확인해 보니 실제 개표에 앞서 투표용지가 겹치지 않도록 개표기를 조정하는 장면이었어요. 이 의원은 올린 지 1시간 뒤 소리 소문 없이 문제의 트윗을 지웠어요. 하지만 이미 팔로어 수십 명이 다시 리트윗해 링크를 퍼 나른 뒤였습니다. 이 의원은 자신의 트윗을 바로잡는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무책임한 글을 올렸다가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슬며시 지우는 행태를 감시하는 게 제 일입니다.

정치인 여러분, 공인의 책무를 잊고 무책임한 발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슬그머니 지워 버리는 행태가 계속된다면, 저는 앞으로도 일복이 터질 겁니다. 잊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어젯밤에 썼다 지운 트윗을 알고 있습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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