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도 깨달음도 없다던 ‘설악산 무애도인’…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 입적
김갑식 전문기자
입력 2018-05-28 03:00:00 수정 2018-05-28 03:00:00
빈부귀천 없이 문턱 낮은 삶 유명… 주민대표가 장례식 조사 맡아
1968년 시조시인으로 등단… 인제서 해마다 만해축전 열어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열반송… 文대통령 “막걸리 한잔 올립니다”
2013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중 주변의 활짝 핀 꽃 사이에서 드물게 웃음꽃을 피운 오현 스님. 거침없는 언행과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 넓은 품으로 세상을 보듬은 현자였다. 동아일보DB
영원한 수행자이자 거리낌 없는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다 26일 입적한 강원 속초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오현 스님이 남긴 열반송(涅槃頌)이다. 신흥사는 설악 무산(雪嶽 霧山) 대종사가 이날 오후 5시 11분 사찰의 주석처에서 입적했다고 밝혔다. 법랍 62년, 세수 87세.
설악과 무산은 각각 법호와 법명이다. 시조시인으로 활동할 때 쓴 속가 이름 (조)오현 스님으로 더 알려졌다. 열반송처럼 스님은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과 거리낌 없는 무애(無애)의 삶을 살았다. 최근 자신의 입적을 예고라도 하듯 지인들에게 생사(生死) 문제가 수행 공부뿐 아니라 삶에서도 지척지간에 있다고 자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스님은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교신문 주필과 제8, 11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원로의원을 지냈다. 신흥사 주지와 조실, 백담사 조실,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있으면서 후학을 지도해 왔다.
27일 신흥사 빈소에서 만난 오랜 도반인 정휴 스님(화암사 회주)은 “오현 스님은 (1962년 끝난) 불교 정화운동 이후 출가자 중 가장 큰 그릇의 소유자”라며 “일부에서는 무애행 때문에 파격과 기행으로 기억하지만 누구보다 생사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 그 문제를 초월한 수행자였다”라고 말했다.

스님의 삶에는 문턱이 없었다. 정·재계 인사와 두루 교류했지만 만해마을이 있는 강원 인제군 용대리 주민들과도 소탈하게 어울렸다. 스님은 생전 용대리 주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실제로 장례식에서는 주민 대표가 조사를 할 예정이다.
스님의 법문은 어렵기보다는 직설과 파격의 또 다른 선시(禪詩)였다. 2013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깨달음과 수행자의 자세는 평범한 이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는 가짜 중이야. 개인적으로는 도(道)도 깨달음도 없다고 생각해. 이렇게 얘기하면 몇 놈 죽자고 달려들 거다. (김 기자) 잘 써라. 서부영화 보면 카우보이가 황금을 평생 찾다 결국 못 찾고 죽잖아. 깨달음이란 게 그런 것 아닐까.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좋은 날은 죽는 날이야.”
스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이기도 했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해 현대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1996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매년 8월 강원 인제에서 만해축전을 개최해 왔다.
가톨릭 신자인 신달자 시인은 오현 스님에 대해 “빈부귀천과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주시는 분이었다”라며 “우리 문화계가 스님에게 큰 빚을 졌다”라고 했다. 스님과 4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김진선 전 강원지사는 “환경을 살린 설악산 주변 정비는 오현 스님의 선견지명 덕분”이라고 했고,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4년 전 총장 취임식 때 맨 앞줄에 자리를 마련했더니 그러면 그냥 가겠다던 스님의 불호령이 선하다”라고 회고했다.
이날 빈소에는 종단 관계자를 비롯해 김진태 전 검찰총장, 박경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총장, 이근배 시조시인, 국회정각회장인 주호영 의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등이 찾았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스님의 입적 소식에 2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스님께선 서울 나들이 때 저를 한 번씩 불러 막걸릿잔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시자 몰래 슬쩍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다. 물론 묵직한 ‘화두’도 하나씩 주셨다”면서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 … ‘허허’ 하시며 훌훌 떠나셨을 스님께 막걸리 한잔 올린다”고 했다.
장례는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다. 30일 오전 10시 신흥사 영결식에 이어 강원 고성군 건봉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치러진다. 033-636-7393
속초=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968년 시조시인으로 등단… 인제서 해마다 만해축전 열어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열반송… 文대통령 “막걸리 한잔 올립니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
영원한 수행자이자 거리낌 없는 자유인의 삶을 추구하다 26일 입적한 강원 속초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오현 스님이 남긴 열반송(涅槃頌)이다. 신흥사는 설악 무산(雪嶽 霧山) 대종사가 이날 오후 5시 11분 사찰의 주석처에서 입적했다고 밝혔다. 법랍 62년, 세수 87세.
설악과 무산은 각각 법호와 법명이다. 시조시인으로 활동할 때 쓴 속가 이름 (조)오현 스님으로 더 알려졌다. 열반송처럼 스님은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과 거리낌 없는 무애(無애)의 삶을 살았다. 최근 자신의 입적을 예고라도 하듯 지인들에게 생사(生死) 문제가 수행 공부뿐 아니라 삶에서도 지척지간에 있다고 자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스님은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교신문 주필과 제8, 11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원로의원을 지냈다. 신흥사 주지와 조실, 백담사 조실,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있으면서 후학을 지도해 왔다.
27일 신흥사 빈소에서 만난 오랜 도반인 정휴 스님(화암사 회주)은 “오현 스님은 (1962년 끝난) 불교 정화운동 이후 출가자 중 가장 큰 그릇의 소유자”라며 “일부에서는 무애행 때문에 파격과 기행으로 기억하지만 누구보다 생사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 그 문제를 초월한 수행자였다”라고 말했다.

스님의 삶에는 문턱이 없었다. 정·재계 인사와 두루 교류했지만 만해마을이 있는 강원 인제군 용대리 주민들과도 소탈하게 어울렸다. 스님은 생전 용대리 주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실제로 장례식에서는 주민 대표가 조사를 할 예정이다.
스님의 법문은 어렵기보다는 직설과 파격의 또 다른 선시(禪詩)였다. 2013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진행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깨달음과 수행자의 자세는 평범한 이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는 가짜 중이야. 개인적으로는 도(道)도 깨달음도 없다고 생각해. 이렇게 얘기하면 몇 놈 죽자고 달려들 거다. (김 기자) 잘 써라. 서부영화 보면 카우보이가 황금을 평생 찾다 결국 못 찾고 죽잖아. 깨달음이란 게 그런 것 아닐까.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좋은 날은 죽는 날이야.”
스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이기도 했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해 현대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1996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설립해 매년 8월 강원 인제에서 만해축전을 개최해 왔다.
가톨릭 신자인 신달자 시인은 오현 스님에 대해 “빈부귀천과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어주시는 분이었다”라며 “우리 문화계가 스님에게 큰 빚을 졌다”라고 했다. 스님과 4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온 김진선 전 강원지사는 “환경을 살린 설악산 주변 정비는 오현 스님의 선견지명 덕분”이라고 했고,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4년 전 총장 취임식 때 맨 앞줄에 자리를 마련했더니 그러면 그냥 가겠다던 스님의 불호령이 선하다”라고 회고했다.
이날 빈소에는 종단 관계자를 비롯해 김진태 전 검찰총장, 박경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총장, 이근배 시조시인, 국회정각회장인 주호영 의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등이 찾았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스님의 입적 소식에 2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스님께선 서울 나들이 때 저를 한 번씩 불러 막걸릿잔을 건네주시기도 하고 시자 몰래 슬쩍슬쩍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시기도 했다. 물론 묵직한 ‘화두’도 하나씩 주셨다”면서 “언제 청와대 구경도 시켜드리고, 이제는 제가 막걸리도 드리고 용돈도 한번 드려야지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됐다. … ‘허허’ 하시며 훌훌 떠나셨을 스님께 막걸리 한잔 올린다”고 했다.
장례는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된다. 30일 오전 10시 신흥사 영결식에 이어 강원 고성군 건봉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이 치러진다. 033-636-7393
속초=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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