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사람 오가는 기차-비행기 길 열리면 그게 통일길”

김갑식 전문기자

입력 2018-05-21 03:00:00 수정 2018-05-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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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 70년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

2014년 경남 하동 쌍계사 방장실에서 만난 이후 4년 만에 다시 만난 고산 스님은 다소 수척해 보였지만 눈빛과 거침없는 말은 여전했다. 부처님 제자로 살기 위한 끊임없는 공부와 기도는 물론 자부심과 반듯한 몸가짐으로 가득 한 ‘지리산의 무쇠 소’였다. 부천=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견디고 참으면서 기다린다는 감인대(堪忍待)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러면 좋은 일이 온다는 거지. 은사는 다른 노장들과 달리 염불도 열심히 하고, 경전도 보고, 그 다음에 참선하라고도 했어.”

지난달 수계(受戒) 70주년을 맞은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85)의 은사 동산 스님(1890∼1965)에 대한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1945년 12세 때 입산 출가해 3년간 행자 생활 뒤 1948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그 가르침대로 고산 스님은 드물게 참선과 불경, 계율에 두루 밝은 수행자가 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과 승려들에게 계를 내리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도 지냈다. 스님 법호 뒤에는 공부와 계율에 철저하고, 고집도 세다는 의미의 ‘지리산의 무쇠 소’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부처님오신날(22일)을 앞두고 요란스러운 봄비가 내린 16일 경기 부천 석왕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선 경 율(禪 經 律)은 물론 농사일에도 정통하다. 도심 석왕사에서는 어떻게 소일하나.

“병원 검진도 있어 쌍계사(경남 하동)와 석왕사를 오가게 됐다. 석왕사에서는 억지로 밭을 만들어 무와 배추는 물론 상추 쑥갓 아욱 근대 호박을 심어 잘 먹고 있다. 손자 상좌에게 농사 가르치는데 지난해 호박 서너 구덩이에서 예순 덩이를 걷어 먹었다고 한다.”


―하루 일과는….

“부처님 제자의 삶이 산사 아닌 도시라고 달라질 게 없다. 새벽 3시면 눈 뜨고 예불과 기도, 손님맞이로 하루를 보낸다. 호텔과 비행기 안에서도 기도가 어려울 것은 없다. 공간에 따라 격식을 갖추지 못해도 잡념 끊고 한마음 한뜻으로 하면 염불삼매에 빠질 수 있다.”


―22일 수계 7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열린다.

“과거 사진을 정리하고 소풍 삼아 흔적이 있는 절집들을 작가와 함께 돌아봤다. 그런데 한번 가면 일을 뗄 수가 있나. 쌍계사서 10시간, 석왕사서 서너 시간 일하게 되지. 그런 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하루 1시간만 하라더라. 그 시간에 일이 되나, 시작하면 적어도 3시간이지. 허허.”


―1999년 금강산 방문 당시 예정에 없던 법회로 벌금을 수천 달러나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다.

“아침에 북에서 한미 연례 훈련에 시비를 걸고…. 여러 고비가 있는 길 아닌가 싶다. 보조국사와 나옹 스님, 서산 대사 등 선사들이 지리산은 웅장한데 빼어난 게 없고, 금강산은 빼어난 데 웅장한 맛이 없다 하면서 묘향산은 웅장하면서도 빼어나 산중의 왕이라 했다. 왕래가 된다면 선사들 흔적을 따라 꼭 한번 가보고 싶다.”


―남북 관계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조언을 주면….

“부처님 말씀으로 대신한다. 욕심 보따리만 풀면 된다. 자기 대에 꼭 언제까지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게 화(禍)가 될 수 있다. 무력이 아니다. 남북의 사람들이 오가고, 기차로 비행기로 다닐 수 있으면 그게 통일이다. 동서독도 왕래하니 결국 통일길이 열렸다.”


―부처님이 오신 뜻을 밝혀 달라.

“부처님 왈, 모든 중생이 본래성불(本來成佛)이라 했다. 말하자면 본래 마음자리는 부처인데 중생의 탈바가지를 쓰고 있다는 거다. 선문답으로 따지면 부처님이 오셨다고 해도 방망이, 안 왔다고 해도 방망이 감이지. 마음자리는 본래 생사가 없으니 옴이 없이 오고, 감이 없이 가는 게지.”


―출가자가 줄고 스님들을 둘러싼 논란 등 불교의 위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걱정할 것 없다. 사람이나 나라, 사업 모두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다. 광복 전후에 입산했는데 성한 절이 하나도 없었고, 노스님들은 불교가 망했다고 했다. 어려움이 있을지는 몰라도, 출가자들이 부처님 제자의 본분을 지켜 살아가면 다시 일어설 것이다.”


―70년 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처음 입산할 때나 지금이나 마음에 큰 변화가 없다. 불교뿐 아니라 유교 도교 기독교 마호메트교까지 알고 싶었고, 성경은 외우다시피 했다. 그런데 평생 살아보니 불교는 최고 종교이자 과학이다. 믿으면 소원 들어준다? 팔만대장경에 그런 말 없다. 부처님 법은 한마디로 ‘지가 해야 한다’는 거다. 불교는 철학 아닌 철학, 종교 아닌 종교야.”


―요즘 손님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주로 건네나.

“처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이다. 다리 밑의 거지에게 큰돈을 줬더니 밤새 잠 못 이루다 새벽에 주변에 뿌리면서 해방됐다고 한다. 깡통 하나로 춤추고 놀고먹고 맘 편하게 살 수 있으니, 그 깡통 하나가 천하의 보배다.”
 
부천=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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