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수정]규제 완화로 날개 단 ‘K뷰티’, 촘촘 규제로 답답한 ‘K바이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입력 2018-05-04 03:00 수정 2018-05-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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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2부 차장
한때 비싼 외국산 화장품을 주로 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기초화장품의 경우 한국 회사들이 한국에서 만드는 제품들을 쓰고 있다. 사용 중인 화장품의 브랜드와 가격대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측면에서 외국산보다 만족도가 훨씬 높다.

최근 글로벌시장에서 한국 화장품(K뷰티)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한국의 드라마, 가요를 즐기는 세계인들이 한국 연예인들의 메이크업을 따라하기 시작하면서다. 글로벌 브랜드만큼 비싸지 않아도 품질이 좋고, 마치 한류 연예인이 된 듯한 환상까지 심어주기 때문이리라. 3일 글로벌 화장품기업 로레알이 한국의 패션 및 메이크업 회사 ‘난다’를 인수하기로 한 것도, 지난해 9월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가 한국 화장품 브랜드 ‘AHC’ 제조사인 카버코리아를 인수하기로 한 것도 이 영향이다. 얼마 전 LG생활건강은 역대 최고의 분기 실적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화장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한류의 성과를 고스란히 가져올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규제 완화가 있다. 국내 화장품의 경우 2000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고 2012년에는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규제 문턱이 더 낮아졌다. 진입장벽이 낮아진 2000년을 전후로 미샤, 카버코리아, 더페이스샵 같은 중소형 회사들이 대거 진입했다. 이들은 화장을 잘하는 한국인 소비자들의 깐깐한 눈높이를 맞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품질을 높여야 했다. 경쟁의 시간들이 축적되면서 ‘K뷰티’의 경쟁력은 향상됐고, 뷰티 한류가 생겨났다.

한국 화장품 회사들의 승승장구를 보며 첩첩산중 규제로 답답해하고 있는 한국의 바이오 회사들이 떠올랐다. 바이오는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에 이어 향후 한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할 미래 먹을거리로 꼽힌다.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은 “한국엔 10만 명 이상의 잘 훈련된 의료진이 있고 잘 갖춰진 건강보험시스템을 통해 구축한 방대한 의료데이터가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정보기술(IT)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는 제약이 너무 많다. 일례로 병원 등을 가지 않고도 침, 혈액, 소변 등으로 비교적 저렴하고 편리하게 유전자 분석을 받을 수 있는 ‘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DTC)’ 분야에서 한국 스타트업인 ‘쓰리빌리언’ ‘제노플랜’ 등이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질병 검사 항목이 제한돼 있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이들이 한국이 아닌 미국, 중국, 일본 등에 먼저 진출하는 이유다.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현장에서 조금의 변화도 못 느낀다는 이야기가 많다.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정치 싸움에 규제 완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만난 한 바이오 회사 대표는 “국회는 정치 싸움을 하느라 입법에 관심이 없고, 정부 관료들은 책임을 지기 싫어 규제 완화에 소극적이다. 나라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답답하다”고 했다. 우리가 주저하는 사이 미국은 전례 없이 유전자 검사 규제를 완화하고 있고, 바이오 굴기를 꿈꾸는 중국은 유전자 가위 임상실험을 주도하며 질주하고 있다. K바이오의 꿈이 이대로 멀어질까 걱정이다.
 
신수정 산업2부 차장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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