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누가 마늘을 조연이라 했는가… 향긋한 마늘밥, 그 부드러운 식감

동아일보

입력 2018-05-03 03:00 수정 2018-05-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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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리를 처음 배울 때 마늘 다지는 것처럼 고약스러운 일이 없었다. 마늘을 여러 양념 중 하나로만 여겨 이미 간 것을 그냥 사용하기도 하지만 신선한 양념 맛을 중시한다면 대개 통마늘부터 조리하는 경우가 많다. 평평하지도 않은 작은 토종 종자의 삼각꼴 마늘을 편으로 저미듯 얄팍얄팍 썰고 다시 그것을 나란히 놓고 곱게 채를 썬 뒤, 그 채를 돌려 다시 잘게 썰어 결국 기계로 다진 마늘과 유사한 형상을 만든다. 칼을 세워 칼손잡이로 마늘을 찧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칼의 넓은 면으로 마늘을 으깨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마늘을 칼로 으깨지도 않으면서 잘게 써는 것은, 마치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곰이 100일 동안 마늘을 먹고 웅녀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 왕검을 낳았다는 신화의 ‘통과의례’가 생각날 정도였다.

그런데 더 허탈한 것은 그렇게 정성껏 다진 마늘은 대개 고기의 누린내, 생선탕의 비린내를 없애는 목적으로 쓰여 자기희생의 조연 역할에 그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어쨌든 마늘은 음식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러다 충남 서산시에서 재래종 육쪽마늘에 자부심이 대단한 토박이 할머니 댁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흔히 밥상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마늘의 원형은 장아찌 정도가 보통인데 할머니는 마늘로 밥을 지어줬다. 마치 고구마밥, 감자밥처럼 통마늘을 듬뿍 넣은 통쾌하고 과감한 마늘밥이었다. 마늘과 평생 함께 살아가는 한국인이지만 대놓고 밥과 함께 떠먹는 마늘은 무척 낯설었다. 그런데 의외로 마늘은 마늘대로 입안에서 부드럽게 무너지고 밥에 밴 마늘 향은 성깔 있는 강기의 마늘이 아니라 익숙하며 부드러운 향내 자체였다. 마늘이 진정 주인공으로 느껴진 밥이었다.

그 마늘밥을 맛본 이후 육쪽마늘에 빠져들게 됐고 마늘과 간장, 술, 여러 채소를 넣어 은근히 달인 마늘맛장이란 새로운 마늘간장을 만들어 밥상 양념의 기본으로 사용한 적도 있었다. 국내 외식 분야에도 마늘 테마 패밀리레스토랑은 익힌 통마늘 자체를 소스처럼 사용해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고, 최근 한식당에서도 마늘을 요리하는 형태가 점차 변하고 있다. 마늘콩피(저온 기름에 마늘을 부드럽게 익힘)로 밥을 짓는다든지 마늘로 타락죽(우유죽)을 만드는 것처럼 조연 양념이 아니라 마늘을 내세우는 식당 음식이 조리사의 역량만큼 조금씩 늘고 있다. 말하자면 서산 할머니 마늘밥이 여기저기서 세련되게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서산과 경북 의성군, 충북 단양군 등 마늘 산지의 토종 마늘 수확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과감한 마늘 음식이 나올 것 같다. 컬링 소녀들만큼이나.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 미쉬매쉬: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21. 마늘가마솥밥 1만2000원. 02-6465-2211

○ 마늘각시: 충남 서산시 충의로 19. 마늘각시한정식 1만5000원. 041-668-8283

○ 성원마늘약선요리: 충북 단양군 단양읍 삼봉로 59. 마늘약선정식 1만5000원. 043-421-8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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