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숨 가빠지고 횡설수설… “패혈증 의심해 보세요”

조건희 기자

입력 2018-05-03 03:00 수정 2018-05-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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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혈증 치료 ‘3시간 지침’ 기억하기

동화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씨(당시 70세)와 유명 식당 ‘한일관’ 대표 김모 씨(당시 53세)에겐 공통점이 있다. 권 씨는 지병 탓에 소변줄을 꽂은 뒤, 김 씨는 가수 최시원 씨의 개에게 물린 뒤 각각 패혈증의 전조 증세를 보였지만 병원에선 응급 처치만 받고 퇴원했다. 이들은 퇴원 직후 패혈증이 급속도로 악화돼 다시 병원을 찾았지만 끝내 숨졌다.

패혈증은 걸리는 순간 중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질병일까. 대한중환자의학회 소속 전문의들은 “아주 간단한 상식만 기억해도 치명적인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결핵보다 무서운 패혈증

패혈증은 상처나 종기로 세균이 들어가거나 화상을 입은 뒤 전신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 여러 장기가 빠르게 나빠지는 질환이다. 환자가 △횡설수설하고 의식이 몽롱해지는 등 정신 상태가 변하거나 △호흡이 분당 22회 이상으로 가빠지고 △수축기 혈압이 100mmHg 아래로 떨어지는 게 대표적인 증상이다. 이런 증상이 처음 나타난 지 3시간 내에 수액과 항생제를 맞고 세균 배양 검사로 근본 원인을 찾아 치료하면 사망 위험을 10% 내로 낮출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패혈증으로 숨지는 환자는 한 해 1만 명이 넘는다. 대한중환자의학회가 2013년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해 패혈증 입원 환자 3만3518명 중 37.8%에 해당하는 1만2665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결핵 환자 3만6089명 중 6.2%인 2230명이 숨진 점을 감안하면 패혈증 사망률은 결핵보다 6배나 높다. 패혈증 사망자는 하루 평균 35명으로, 2015년 유행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의 전체 사망자 수(39명)와 맞먹는다.

이는 가족이나 지인이 패혈증 의심 증상을 보여도 알아채지 못하는 데다 설령 응급실이나 중환자실로 데려가도 의료진이 적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다. 패혈증을 방치하면 패혈성 쇼크로 악화돼 한 달 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30% 수준으로 치솟는다.

김제형 고려대 안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국내 중환자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패혈증 환자를 3시간 내에 진단 및 치료하는 ‘3시간 지침’ 준수율은 평균 5.6%에 불과했다. 미국 뉴욕주의 병원에서 실시된 같은 조사에서는 준수율이 무려 82.5%에 달했다.


○ 갑자기 횡설수설? 패혈증 의심해야

전문의들은 일반인도 패혈증이 무엇인지,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미리 알아둬야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패혈증은 상처로 세균이 들어갔을 때뿐 아니라 폐렴이나 뇌막염 등 지병이 악화됐을 때에도 생길 수 있다. 박성훈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환자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호흡이 가빠지면 치매나 감기 등으로 치부하지 말고 즉시 응급실로 데려가 ‘패혈증인 것 같다’고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더 근본적인 대책은 의료진의 패혈증 치료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이르면 다음 달부터 삼성서울병원 등 전국 27개 대학병원이 참여하는 ‘패혈증 감시 체계’를 가동할 방침이다. 중환자실에 온 패혈증 의심 환자의 치료 과정을 기록해 ‘3시간 지침’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참여 병원들이 그 결과를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3시간 내에 진단 및 치료하는 ‘3시간 지침’만 잘 지켜도 패혈증 사망률을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호주는 ‘3시간 지침’을 각 병원에 보급한 지 10년 만에 패혈증 사망률을 35%에서 18.4%로 낮췄다.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장(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장)은 “한국 정부는 결핵 퇴치에 연간 수백억 원의 예산을 들이고 있지만 정작 더 심각한 패혈증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며 “일반 국민의 패혈증 인식을 높이고 의료진을 교육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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