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오륜기 드론쇼, 미래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8-05-03 03:00 수정 2018-05-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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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육 한림원탁토론회
2021학년도 수능서 ‘기하’ 제외… 공간지각-표현력 학습 어려워져
수학단체 “중요분야 빠져” 비판
“선진국선 심화학습 강화 추세… 반복학습으론 미래인재 요원”


“세계가 감동했던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의 드론쇼가 과연 미래의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한국수학교육학회장)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림원탁토론회 ‘4차 산업혁명시대 대한민국의 수학교육, 이대로 좋은가?’ 주제 발표에서 현 수학교육의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간 지각·표현 능력을 배우는 ‘기하’ 교과목을 현재의 고1 학생이 제대로 배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올해 2월 말, 올해 고교에 입학한 이과 1학년생이 치를 2021년도 수능의 ‘수학(가)’ 출제 범위에서 기하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의무적으로 배워야 할 학습시수를 줄여 학생의 부담을 낮추고 사교육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대한수학회,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 등 수학단체는 “수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를 제외했다”며 즉각 비판 성명을 발표했었다. 이날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과학자 단체가 토론회를 열고 한목소리로 수학 교육의 후진화를 우려하고 나선 것이다.

기하 교과목은 이미 2015년 교육과정 개정 때 필수과목에서 진로선택과목으로 떨어져나갔다. 필수는 아니지만 현재 고2가 치르게 되는 2020년 수능 이과의 출제 범위에는 포함돼 있어 대다수 이과생이 수강했다. 하지만 고1의 기하 수강률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상준 양명고 교사(수학)는 “고3 수업으로 일부 채택은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시험을 보는) 타 분야와 연관된 부분만 가르치는 등 파행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이 선진국 수학교육 흐름에 역행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대입 시험 출제 범위에서 오히려 기하 등 심화학습을 강화하고 범위도 늘리는 추세다. 미국 심화 교과과정인 AP코스에서는 미분방정식, 극형식함수, 벡터함수 등을 다루며 대학 입시에도 가산점을 준다. 영국은 2017년 9월 대입 시험을 개정해 필수 교과를 늘렸고 기하도 출제 범위에 포함시켰다. 일본은 기하, 벡터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현재 빠져 있는 극좌표, 복소평면 등의 시험을 치른다. 문과에서도 삼각함수나 미분적분, 벡터까지 선택을 통해 치를 수 있다. 권 교수는 “2017년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대학별 고사에서도 기하 문제가 출제된 바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는 수학 교육 약화가 국가 과학기술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규환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우리가 사는 3차원을 넘어서는 ‘다차원’ 개념이 필요한데, 이걸 배울 교과목은 기하뿐”이라며 “알파고를 낳은 딥러닝, 양자컴퓨터 등 기하가 필요한 분야가 많다”고 말했다. 김성근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장(서울대 자연대학장)도 올해 2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인류가 수천 년 익혀 왔고 GPS 등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기하를 출제에서 제외하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수학계는 이번 기회에 ‘학습량 줄이기’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학자인 박형주 아주대 총장은 “학습량이 줄면서 현장의 수학교육이 오히려 (기존 지식의) 반복학습 중심으로 변했다”며 “사유를 중시하는 미래 인재에서 멀어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향숙 대한수학회장(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도 “인공지능 로봇과 살아가야 할 학생들을 과거형 인재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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