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파고’ 넘으려면 생산성 향상이 답”

김용석 기자

입력 2018-05-02 03:00 수정 2018-05-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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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산성본부 노규성 회장

취임 70일째를 맞는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이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해 시작된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6곳(64.0%)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건비가 오르거나 생산성이 저하되는 등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선 최저임금 인상으로 중소기업 56%가 신규 채용 축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포용성장 정책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한국생산성본부의 노규성 회장은 “포용성장이 실제 경영성과로 이어져야 하는 지금이야말로 무엇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포용성장 정책을 받아들일 주체는 결국 기업”이라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과거 방식을 벗어나 경쟁력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산성을 높여야만 포용성장 정책을 소득주도 성장과 일자리 창출 성과로 연결짓는 ‘양의 되먹임’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취임 70일째를 맞는 노 회장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한국생산성본부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국생산성본부는 국내 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1957년 설립된 교육·컨설팅 전문기관이다. 생산성 향상과 4차 산업혁명 전문가인 노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인터뷰 다음 날도 경북 구미와 부산, 그 다음 날 제주도 강연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강연에 나선 이유에 대해 “생산성 향상의 방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포용성장을 실제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키는 가교를 놓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준비는 무척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60.5%가 잘 모른다고 답했고, 80.8%는 스스로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생산성을 높여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량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하지만 몇몇 글로벌 대기업을 제외하면 스마트 공장 등 생산성 혁신이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닙니다. 처음엔 막연하게 걱정하던 최고경영자(CEO)들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뚜렷한 비전을 얻어간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노 회장은 실제 기업 현장 사례를 들어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자동차용 용접 너트와 정비 공구를 생산하는 국내 중소기업 프론텍은 수작업 오차 문제를 개선하려 스마트 공장을 도입했다. 생산관리시스템(MES) 도입 후 비숙련자의 생산 참여가 가능해졌다. 이는 매출 4%, 생산성 7% 성장과 불량률 80% 감소, 경력단절여성 45명 신규 채용으로 이어졌다. 수제구두 회사인 칼렌시스는 구매에 관련된 빅데이터 분석을 마케팅 전략으로 연결시켜 제품문의 104%, 매출 48%를 늘리는 성과를 냈다.

그는 “예컨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일의 범위와 방식, 속도를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생산성 혁신이 진행 중이고 그 결과는 일자리 확대와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멘스도 기존 고용 1800여 명을 유지하면서 전환교육, 고부가가치 직무 전환 등을 통해 생산성을 8배 향상시켰다”며 “명확한 비전을 갖고 대화와 합의를 하면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이 서로 어우러지는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공업 발전 시대에 만들어진 생산성의 개념을 바꾸자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선 공업 발전 시대에 만들어진 생산성본부의 명칭을 ‘창의성본부’로 바꾸자는 제안도 한다. 그러나 노 회장은 “1∼3차 산업혁명도 본질적으로 생산성 혁명이다. 지금 생산성의 개념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 맞은 업무혁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성에 대한 개념 정립을 국제적으로 이끌자며 각 분야 학자들이 참여하는 미래생산성포럼도 신설했다.

노 회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들도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데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 전문인력 확보(27.1%)와 직원 역량 강화(19.7%)를 꼽았다. 예컨대 중견·중소기업이 생산성 향상과 4차 산업혁명을 실천하려면 기업 내에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노 회장은 이에 대비해 매년 25만 수강생을 대상으로 1800여 개 과정을 운영 중인 생산성본부의 교육도 이론적 교육 대신 실행과 토론,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현장직무교육(OJT) 중심으로 바꾸기로 했다. 공공기관으로서 ‘일자리 매칭 생산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는 “교육 분야 스타트업이 우리의 경쟁자”라며 “블록체인, 인공지능 분야와 협업해 변화를 추구하고, 온라인공개강좌(MOOC)도 도입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노 회장은 생산성본부 스스로 4차 산업혁명을 도입하는 자체 혁신을 위해 정만기 단국대 교수(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이승희 금오공대 교수를 공동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위원회를 발족했다. 또 본부 내에 회장 직속 기구인 4차 산업혁명 추진단을 신설하고 연구개발(R&D) 사업기획단을 설치해 기존 조직에 정보통신기술(ICT) 혁신 역량을 더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생산성지수 및 혁신지수를 개발하고, 스마트 공장·물류·서비스 산업 컨설팅을 개척하는 등 새 분야를 적극 개척할 계획이다.

그는 “다행히 정부 내에도 생산성 향상과 4차 산업혁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과거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각종 제도를 개선하고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5세대(G) 통신 등 인프라를 보완하는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석 기자 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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