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못참아 부모 목조르고 칼부림… 보호막 없는 정신질환자 가족들

동아일보

입력 2018-04-30 03:00 수정 2018-04-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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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입원 막는 정신건강법 1년… 가족들 안전 지켜줄 관리 부실

강제입원 대신 가정보호를 원칙으로 하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 1년을 맞았다. 그러나 정신장애 환자를 돌보는 가족 중에는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 탓에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아일보 DB

“또 반찬 남겼어? 골고루 먹어야지.”

80대 노모가 저녁식사를 끝낸 딸에게 말했다. 잠시 후 딸은 부엌 싱크대 위에 있던 흉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방에 있던 노모의 온몸을 찔렀다. 비명소리를 들은 이웃이 112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A 씨(63·여)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2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노모에게 흉기를 휘두른 딸 A 씨는 조현병(정신분열증)과 우울증 등을 앓는 정신장애 2급 환자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정신을 잃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이모 씨(54)는 아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조현병을 앓는 아들(24)이 갑자기 자신의 목을 조른 것이다. 아들은 “왜 평소처럼 웃지 않고 인상을 쓰며 날 쳐다보느냐”고 소리쳤다. 키 170cm 초반의 이 씨가 180cm의 덩치도 큰 아들을 힘으로 이길 수 없었다. 이 씨는 ‘잘못하면 진짜 죽겠다’ 싶은 생각에 겨우 아들을 뿌리치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 행인의 휴대전화를 빌려 112를 눌렀다. 이 씨는 “경찰차에 타 호송되는 아들을 보는데 억장이 무너졌다. 아픈 아들을 신고하는 아버지가 세상에 또 있겠느냐”며 울먹였다.

정신장애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안전이 위험수위에 올랐다는 우려가 나온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정신장애 환자가 폭력을 휘두르면 결국 가족이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강제입원’이 아닌 ‘가정보호’를 원칙으로 하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다. 인권 보호를 위해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한 것이다. 하지만 정신장애 환자를 집에서 돌볼 경우 다른 가족이 겪는 고통도 심각하다. 법 시행 1년이 됐지만 ‘가정보호’를 선택한 가정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와 치료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견이 많다.

조현병을 앓는 딸을 둔 김모 씨는 “성인이 된 딸은 점점 힘이 강해지는데 나는 나이 먹고 약해지면서 도저히 혼자 돌볼 수 없다. 정신장애 환자를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사회에 두기로 했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끔 도와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신장애의 경우 약물치료뿐 아니라 지속적인 상담이나 재활이 중요하다. 이는 지역보건소의 사회복지사가 맡고 있다. 대부분 계약직이고 처우가 열악해 장기간 일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씨는 “아들이 한 사회복지사와 친해져 체험학습을 하며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계약이 끝나 3개월 만에 복지사가 바뀌었다. 그때 상처 탓인지 아들이 복지센터 방문을 거부한다”고 토로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안보겸 채널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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