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처신? 앎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법이라…”

김갑식 전문기자

입력 2018-04-16 03:00 수정 2018-04-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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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추대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

통도사 서운암 작업실 근처에 있는 감나무 밭의 성파 스님. “덕담이나 법문, 이런 것 들려줄 것도 없고 싫어한다. 자연이, 세상이, 일터가 공부방이다. 와서 보고 가는 게지. 안 보이면 할 수 없고…”라는 게 스님의 말이다. 양산=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2일 찾은 경남 양산의 통도사 서운암. 사찰의 암자들은 비슷하기 마련인데 서운암 분위기는 달랐다. 야산을 배경으로 저마다 주인공인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그래서 꽃암자다. 한편에는 한약재를 넣어 옹기에 담아 숙성시킨 3000여 개의 ‘장독숲’이 이어진다. 명물이 된 서운암 약된장이다. 위편 장경각에는 도자로 조성한 16만 도자대장경이 있다.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있는 불보(佛寶)사찰로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3보 사찰로 꼽힌다. 통도사는 지난달 성파 스님(79)을 방장(方丈·선원 율원 강원 등을 갖춘 큰 사찰의 가장 큰 어른)으로 추대했다. 전각이 아닌 작업실로 오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손을 털며 들어오는 낡은 솜옷의 스님을 보는 순간 의문이 풀렸다.

서운암은 성파 스님을 닮았고 스님은 서운암을 닮았다. 방장 추대 이후 첫 인터뷰다.


―방장 추대 이후 달라진 게 많을 듯하다.


“뭐 그런 게 있겠나. 한평생 살던 곳이고 달라질 게 없다. 남들은 달리 볼지 모르지만.”


―들꽃축제, 문학인축제, 장경각 도자대장경…. 문화로 가득하다.

“사찰을 가람이라고 하는데 그걸 지키는 것은 정적(靜的)이야. 여기에 동적인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옛날처럼 팔관회 같은 행사를 할 수는 없다. 시대에 맞는 문화활동이 필요하다. 들꽃 싫어하는 사람 있나. 도시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들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지.”


―수행 분위기가 깨진다는 반대 의견도 있지 않았나.

“필요 없는 것은 곁에서 귓속말을 해도 안 들리고, 필요한 것은 100리 밖 소리도 들리는 법이야.(웃음)”


―방장은 좀 은둔의 매력이….

“과거처럼 승속(僧俗)이 분리될 수 없는 세상이다. 당신도, 나도 휴대전화가 있지 않나. 경계가 사라졌다. 국제관계로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는데 작은 땅덩어리에서 그럴 필요가 없어. 같은 공기를 함께 마음껏 들이마시며 살아야지.”


―도예, 옻칠, 서화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는데….

“통도사 주지 소임하면서 시작했는데 거의 40년 정도…. 일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일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수행자이신데 예술의 끼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

“있는 게 아니고 대부분이야, 허허. 수행과 예술이 따로 있나.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잖아. 수행의 근본 바탕이 있으면 어떤 것을 해도 수행이야. 나는 소라 우유이고 수행인 거지.”

소를 자처하는 스님은 조계종 종정과 통도사 방장을 지낸 은사 월하 스님(1915∼2003)이 제자의 ‘일탈’을 못 마땅하게 여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성파 스님은 “중이 그런 것 하면 안 된다고 하셨지. 속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중이라고 생각했지만 말대꾸가 되니까 언급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은사는 어떤 분이었나.

“한마디로 승려다운 승려, 중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모습을 입적할 때까지 실천한 분이야. 따로 (밥)상을 받지 않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발우공양을 하셨어. 그런데 평생 엄격하던 대선사도 말년에는 인간적 정을 많이 보이셨어. 조지장사 기명야애(鳥之將死 其鳴也哀) 인지장사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 새가 죽을 때가 되면 우는 소리가 구슬프듯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진심이라고 했어. 그게 인생이라….”


―어떤 화두를 잡고 있나.

“1800공안뿐 아니라 모든 의문, 모르는 게 화두지. 줄 화두가 어디 있고, 받을 화두가 어디 있나.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데 어떻게 잡겠나.”


―출가자가 줄고 있다.

“절집 생활만큼 좋은 게 세상에 어디 있나. 좋아도 보통 좋은 게 아니고, 극락이 따로 없어.”

스님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공직자의 처신과 사퇴 문제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비지지난이행지난(非知之難而行之難), “아는 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어렵지 알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대꾸했다.

다시 짧은 법문을 청하자 손사래를 치던 스님은 작업실 앞 감나무 밭으로 나오자 귀에 쏘옥 들어오는 말을 툭툭 던졌다. “아유일권경 불인지묵성(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내게 한 권의 책이 있으니 그 책은 종이와 먹으로 된 게 아니다), 전개무일자 상방대광명(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펼쳐 보니 한 자도 없지만 항상 대광명을 놓는다). 일터가 선방이고 공부방이지. 백 마디말보다 와서 보고 가라는 거지. 열심히 봐도 안 보이면 할 수 없고. 마음이 없으면 봐도 안 보이고 먹어도 맛을 몰라.”
 
양산=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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