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들 뛰어든 사우디 원전 수주… 한국 험난한 도전

박민우 특파원

입력 2018-04-04 03:00 수정 2018-04-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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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조원 규모 예비사업자 4월 선정

사우디아라비아가 200억 달러(약 21조 원)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할 예비사업자를 이달 안에 선정한다. 사우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총괄하는 ‘킹압둘라 원자력·재생에너지 시티(KACARE)’는 “4월까지 예비사업자 2, 3곳을 선정하고 올해 안에 최종사업자를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우디 정부는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 5개국 원전 사업자로부터 의향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10년간 중동 원전시장이 4배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각국 정상들은 사우디 원전 수주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상황이다.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온 문재인 정부의 자원외교가 첫 번째 시험대에 올랐다.


○ 자원외교 격전지 중동

사우디는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2670억 배럴·15.7%)이 베네수엘라(17.5%) 다음으로 많은 나라다. 그동안 전력 생산은 천연가스와 석유 등 화석연료에 거의 100% 의존해 왔다. 그러나 최근 6년간 평균 전력소비 증가율 7%로 에너지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1.4GW(기가와트) 원전 2기를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국경 인근인 움 후와이드 또는 코르 두웨이힌 지역에 지을 계획이다.

이번 사우디 원전 사업자 입찰은 전초전에 불과하다. 사우디는 204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17.6GW까지 높이기로 했다. 전체 발전 비중의 약 15%로 이를 위해서는 약 16기의 원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사우디의 원전 사업비는 최소 1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사우디 최초의 원전 사업자로 선정되면 앞으로 있을 원전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사우디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원전 시장은 향후 10년간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생산된 중동지역 전력의 97%가 천연가스와 석유에서 나왔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은 2028년 중동지역 전기 수요가 지난해보다 30%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평균(18%)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 발 벗고 나선 ‘스트롱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UAE 바라카 원전 1호기 완공식에 참석했다. 바라카 원전은 한국이 해외에 처음 건설한 원전이자 중동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원전이다. 한국은 바라카 원전 완공을 통해 ‘한국형 원전’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세계에 입증했다. 사우디의 전통적 우방 UAE는 사우디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을 지원하기로 약속해 한국과 UAE 양국은 컨소시엄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경쟁국 ‘스트롱맨’들이 발 벗고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백악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 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쇠락한 미국 원전 업계를 되살리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이행할 기회로 본 것이다.

미국이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 원자력법에 따라 수입국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란과 역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사우디로서는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트럼프의 파격적인 제안으로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다. 다만 중동 핵개발 경쟁을 우려하는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대인의 반발이 트럼프의 결정을 어렵게 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살만 사우디 국왕을 모스크바로 초청해 원전 분야 협력을 논의했다.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사우디 국왕이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외국 순방 때마다 원전 수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신규 원전의 40%를 짓고 있다. 2030년까지 1조 위안(약 173조 원)의 원전 수주를 목표로 내건 시 주석이 조만간 사우디 원전 수주를 위해 직접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독일의 탈원전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프랑스의 원전 기술력을 다시 홍보하고 있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최근 경쟁사 아레바의 원전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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