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인종청소, 페북이 증오 불질러

위은지 기자

입력 2018-04-04 03:00 수정 2018-06-0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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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언론 “당시 미얀마 극우 불교단체 지지자들의 혐오 글, 페북 타고 확산”

“부패한 권력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30년 전인 1988년 8월, 아웅산 수지 여사(사진)는 50만 명의 시위 군중 앞에서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며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다. 199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20세기 민주화운동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가 라카인주(州)를 주목하고 있지만 우리는 평화롭게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국가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인종 청소’ 사태가 발생한 지 약 7개월이 지난 1일, 수지 미얀마 국가자문역은 민선정부 출범 2주년 TV 연설에서 이 문제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라카인주는 로힝야족 집단 거주 지역으로, 지난해 미얀마 군부가 ‘인종 청소’를 자행했던 곳이다. 30년 전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던 수지 자문역은 자국에서 일어나는 비민주적 사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는 로힝야족은 ‘페이스북 가짜 뉴스’의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2일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얀마에서 선동적인 메시지를 확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3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디지털 연구 분석가인 레이먼드 세라토는 미얀마 극우 불교단체 지지자들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8월 로힝야족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페이스북이 혐오 발언을 퍼뜨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여전히 로힝야족 사태는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미얀마 정부와 방글라데시 정부는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로 도피한 70만 명의 로힝야족을 송환하는 데 합의했지만 송환 개시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 3일 AFP통신은 미얀마 정부가 방글라데시 불교도들에게 토지와 시민권 등을 제공하며 로힝야족이 떠난 라카인주로의 이주를 장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의 실질적 통치자인 수지 자문역이 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1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호주-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로힝야족 사태에 대한 정당하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때 시드니 시내에선 수백 명의 시위대가 수지 자문역에게 수여된 노벨 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고 외쳤다.

수지 자문역이 모순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에는 ‘코피 아난 보고서’가 있다. 수지 자문역은 실권을 잡은 지 4개월 만인 2016년 8월 라카인주 내 뿌리 깊은 불교도와 무슬림 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라카인주 자문위원회를 꾸려 개선 방안을 도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아난 전 총장은 1년간 수차례 실태 조사를 통해 작성한 최종 보고서를 지난해 8월 23일 수지 자문역에게 전달했다.

이 보고서는 미얀마에 거주하는 약 100만 명의 무슬림 중 4만 명만이 시민권을 갖고 있고 이동의 자유, 교육권과 참정권 등을 제한받는 등 무슬림에 대해 광범위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무슬림 공동체와의 논의를 통해 미얀마 정부가 투명한 시민권 확인 절차를 마련하는 한편 라카인주에 교육 및 의료 시설 등을 확충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보고서가 전달된 지 이틀이 지난 8월 25일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라카인주 내 경찰 초소 수십 곳을 공격했다. 미얀마군은 반군 색출이라는 미명하에 ‘인종 청소’를 자행해 70만 명 이상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도피해야 했다. 국제사회는 ‘수지 자문역은 자신이 요청한 보고서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며 계속 압박하고 있다.

전 세계적 압박이 지속되자 수지 자문역은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호주-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수지 자문역이 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에게 로힝야족 사태와 관련해 충분한 설명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지 자문역이 쉽게 태도를 전향하지 않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영국 BBC는 “미얀마 군부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그의 고집스러움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며 “그의 지인들은 그가 내린 결정을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걸 안다”고 분석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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