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IT]“게임 1등해서 뭐 할래?” 놀림받던 소년에 등불 된 ‘스타크래프트’

신동진 기자 , 임현석 기자

입력 2018-03-30 16:13 수정 2018-03-3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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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게임 발매 20년… ‘1세대 스타게이머’ 기욤 패트리 인터뷰

29일 서울 강남구 블리자드 한국사무소에 있는 직원용 PC방에서 ‘1세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가 프로토스 종족의 핵심건물인 ‘파일런’ 모형을 손에 들고 웃고 있다. 은퇴 후 방송인으로 전향한 기욤은 “스타크래프트 마니아인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와 한게임 붙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1999년 8월 스키 꿈나무였던 캐나다 고등학생이 처음 한국땅을 밟았다.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대회에 초청된 ‘특별게스트’였다. 단박에 준우승하면서 상금 1500만 원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미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대회에서 상금으로만 6000만 원을 번 정상급 게이머. 대학 입학을 위해 고국으로 잠시 귀국했지만 게임 아니 한국을 잊을 수 없었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해도 주변에서 “컴퓨터 게임 1등해서 뭐 할래”라며 놀리던 캐나다와 한국은 뭔가 달랐다. 결국 ‘e스포츠’ 사업과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만든 한국의 스타열풍은 17세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9일 서울 강남구 블리자드 사무실에서 ‘1세대 스타게이머’ 기욤 패트리(36)를 만났다. 한국에 온 지 19년째인 그는 한국말을 편하게 했다. 2004년 프로게이머를 은퇴한 뒤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스타에 대한 애정은 그대로였다. 현역 시절 생긴 늦잠 습관으로 인터뷰에 지각했지만 게임 얘기를 시작하자 10대로 돌아간 마냥 푸른 눈을 반짝였다.



● e스포츠, 프로게이머 태동 알린 성지

블리자드가 1998년 3월 발매한 스타는 테란, 저그, 프로토스 등 3개 종족이 우주 전쟁을 벌이는 컨셉으로 전 세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자원(미네랄, 가스)을 채취해 유닛과 건물 등 전쟁 물자를 준비하고, 공격과 방어 전략을 세우는 과정이 재미를 더했다. 2000년 같은 회사에서 출시한 ‘워크래프트’에 밀려 해외에서 고전하고 있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인기를 더했다. 다른 나라 대회는 통상 3위까지 상금을 줬지만 한국에서는 8위를 해도 해외 대회 3위보다 더 많은 상금을 줬다. 스타 게이머들에게 한국은 ‘성지’였다.

“2000년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다시 한국에 왔지만 프로게이머로서의 수명은 길어봤자 1, 2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픽과 사양이 좋은 신작이 계속 쏟아지는데 2년 이상 인기가 지속된 게임이 그때까지는 없었거든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타 성지’ 한국에는 PC방과 게임중계라는 변수가 있었다.
“고향(캐나다)에서 PC방에 가려면 차를 타고 10분 넘게 걸렸는데 한국은 조금만 걸어도 PC방 천지였어요. 남학생 전유물이던 캐나다 PC방과 달리 여자와 아저씨(회사원) 손님이 많은 것도 신기했죠.”

스타는 한국에 PC방 신드롬을 일으켰다. 게임 아이디(ID)만 있으면 세계 누구와도 겨룰 수 있는 ‘배틀 넷’(전용 인터넷)과 최대 8명이 삼삼오오 ‘동맹’을 맺고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팀플레이’ 포맷이 인기의 원동력이었다. 함께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PC방은 방과 후 놀이터이자 2차 회식장소가 됐다. 1998년 전국 100여 곳에 불과했던 PC방은 2년 뒤인 2000년 1만5000여 개로 폭증했다.

‘하는 재미’ 못지않게 ‘보는 재미’도 컸다. 국내에서는 1999년 세계 최초 스타 중계방송을 시작으로 2000년 게임전문 케이블 채널(온게임넷)까지 생겼다. 정상급 선수들의 기상천외한 전략과 상대 움직임을 간파해 순식간에 뒤집는 광경에 관중은 열광했다. 매스컴은 선수들을 우상으로 만들었다. 학교에서 발표도 못할 정도로 수줍음 많던 외국인 학생도 금세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에 온 지 2,3달 만에 대회 우승을 했어요. 패밀리레스토랑에 갔는데 40대 아저씨가 자기 아내, 아이를 데리고 사인을 받아가는 걸 보고 인기를 실감했죠. 가게에 가면 먼저 알아보고 대신 계산해주거나 공짜 서비스도 많았어요.”

스타크래프트 저그 종족

기욤은 기동성 있는 셔틀(프로토스의 병력 수송선)에 리버(느려도 대량 살상능력을 갖춘 지상용 공격유닛)를 태운 뒤 상대방 진영에 떨어뜨려 기습하거나(일명 ‘슈팅리버’) 자원을 캐는 일꾼을 많이 뽑아 기지 확장(멀티) 전 일일이 컨트롤하는 플레이 등을 처음 선보였다. 한국 선수들보다 손놀림은 느렸지만 멀티 타이밍을 잘 잡고 끊임없이 병력(물량)을 뽑아내 장기전에서 유리했다. 스타에 전략과 전술 개념을 확장한 게이머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프로게이머가 뜨자 일각에선 ‘놀고먹는’ 편한 직업이란 부정적인 인식도 나왔다. 정말 그랬을까. 기욤은 지금은 프로게이머들이 억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지만 초창기 게이머들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타가 1000만 장 넘게 팔렸지만 프로게이머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20명도 안됐어요. 처음엔 스폰서나 매니저 찾기도 힘들었죠. 상금을 못 받거나 떼인 선수들은 오직 열정으로 견뎠어요.”

대회 상금이나 중계방송 출연료를 매니저가 가로채는 배달사고가 빈번하자 방송국에서는 아예 입금은 선수 본인계좌로만 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선수들의 입지가 바뀐 건 2004년 스타리그 결승전에 10만 관중이 몰리고 나서부터다. 게임의 인기와 가능성을 목도한 대기업들이 앞다퉈 프로게임단을 창단하고, 정부도 e스포츠 지원을 확대했다. 세계 최초로 창단한 공군 e스포츠 팀은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테란 종족


● “청소년기 성장과 삶을 이끌어준 등불”

“요즘 스마트폰 게임은 쉬워지고 심지어 자동으로 하던데 그게 게임인지 잘 모르겠어요.”

기욤은 스타의 매력을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전략’과 노력이 천재를 이기는 ‘열정’을 꼽았다. 그는 “스타에서 제일 마음에 든 건 저와 옆사람에게 똑같이 리버 두 마리씩을 줘도 보여줄 수 있는 게 하늘과 땅 차이라는 점”이라며 “보기는 쉬워도 따라하기는 어려운 게 스타의 묘미”라고 말했다. 치열한 고민과 연습 없이 영원한 승자도 없다는 얘기였다.

“저도 처음엔 연습 조금만 하고 쉽게 우승하는 ‘천재’를 동경했지만 언제부턴가 지독한 연습벌레인 한국 선수의 기량이 일취월장하는 게 멋져 보였어요. 저도 합숙하면서 관리를 받았으면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을 텐데….”

기발한 플레이로 승승장구하던 기욤은 자신만큼 창의적인 전략으로 약체 테란을 강자반열에 올린 신예 임요환 선수(별명 ‘테란의 황제’)에게 패하며 데뷔 4년 만에 은퇴를 결심한다.

15년 전 동료들과 누렸던 스타 전장은 이제 인공지능(AI)과의 대결이 시작됐다. 지난해 세종대에서 인간과 AI 첫번째 대회가 열렸고,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도 게임시스템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기욤은 인간의 승리를 쉽게 장담하지 못했다. 그는 “스타는 생각하고 컨트롤할 게 너무 많은 게임이라 지금 당장은 이영호 선수(현재 1위)를 이길 AI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컴퓨팅 능력이 배가되면 키보드나 마우스를 안 쓰는 AI가 더 유리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식상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바꾸지 않았다. ‘기욤에게 스타란?’

“20년이 지났지만 스타를 했던 기억은 어제처럼 생생해요. 스타에 대한 추억과 함께 자란 거죠. 저한테는 삶과 길을 이끌어준 ‘등불’이었는데 여러분한테는 어떠신가요?”

스타크래프트 프로토스 종족


■ GG, 셔틀, 스캔, 버로우, 하삼체…일상 속 ‘스타 문화’

지난달 평창겨울올림픽 컬링 여자 결승전. 경기 종료 전 한국 대표팀이 상대팀에게 먼저 다가가 ‘GG(Good Game)’를 선언했다. GG는 컬링에서 승부를 뒤집기 어려울 때 기권하며 쓰는 말이다.

패자가 먼저 승복하는 ‘GG 매너’의 시초는 스타크래프트다. 건물이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패전이 선언되지 않는 시스템 룰상 더 이상 버티기 힘들 땐 채팅창에 GG를 치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기본 매너였다.

이처럼 일상에서 ‘스타 문화’는 다양하게 남아 있다. 심부름 시킬 때 붙이는 ‘셔틀(shuttle)’은 프로토스 종족의 병력수송선 이름이다. 빠른 속도와 전술 능력으로 인기가 높았다. 뭔가를 훑어볼 때 쓰는 ‘스캔(scan)한다’는 표현은 테란 유저가 클릭한 지역에서 감춰있던 상대방 동태를 5초 동안 밝혀 보는 기능이다. 저그 종족이 땅을 파서 잠복하는 기술인 ‘버로우(burrow)’는 일상에서 숨거나 회피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온라인에서 유행한 ‘하삼체’는 숫자 ‘3’과 관련된 징크스를 가진 프로게이머를 놀리려 문장 끝에 ‘~했삼’ ‘~하삼’ 등을 붙이면서 시작됐다.

1999년 디스커버리호는 우주로 스타크래프트 CD를 가져갔다. 판소리(박태오 ‘스타대전 저그 초반러시 대목’)나 가요(래퍼 화나의 ‘라이모닉 스톰’)에도 스타크래프트 이야기가 접목됐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문재인 후보 캠프가 ‘기호 1번’을 상징화한 맵을 공개하며 선거운동에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활용했다. 29일 게임 전문 리서치업체 ‘게임트릭스’에 따르면 현재 스타크래프트의 PC방 게임 순위(사용량)는 전체 6위에 올라있다.

블리자드 관계자는 “학창시절 추억의 게임을 잊지 못하는 30, 40대 직장인들에 못지않게 ‘스쿨챔피언십(청소년 리그)’을 통해 제2의 기욤, 임요환을 꿈꾸는 학생들의 관심 열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2017리마스터 포스터



■ 탁구대에 모니터 2대 올려놓고 방송 시작…‘스타 중계’ 뒷 이야기

스타크래프트가 20년 넘게 인기를 끈 배경은 무엇일까. 게임 중계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e스포츠를 첫 손에 꼽는 이가 적지 않다. 게임을 직접 하지 않더라도 ‘보는 재미’에 빠진 팬층이 두텁게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첫 스타크래프트 방송 중계는 1999년 3월 탁구대에서 이뤄졌다. 방송사는 어린이 케이블 채널인 투니버스였다. 외환위기 이후 일감이 줄어 작은 스튜디오가 탁구장 등 직원 휴게실로 쓰일 무렵 입사 4년차 황형준 당시 PD(48·전 온게임넷 본부장)가 게임을 스포츠처럼 중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탁구대에 먼지를 털어내고 크로마키 천을 깔았다. 배불뚝이 브라운관(CRT) 모니터 두 대를 올려놓고 컴퓨터 책상을 임시로 만든 뒤 각지의 게임 고수들을 불러 모았다.

“모든 걸 처음부터 준비했죠. 용산전자상가에서 직접 컴퓨터 모니터를 영상으로 송출하는 어댑터도 직접 구입했습니다.”

20년이 지난 현재 e스포츠 방송은 수억 원 상당의 고가 방송장비가 동원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중계권 등을 포함한 e스포츠 시장 규모도 연간 3500억 원에 달할 정도다.

첫 방송이 나간 뒤 시청률은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 1999년 프로게이머오픈 대회 결승전을 첫 생중계로 치르면서 다른 스포츠 중계처럼 긴박감을 더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결승전 방송은 중계 도중 통신오류가 발생하는 사고로 “스포츠는 라이브”라며 생중계를 고집했던 황 전 본부장을 곤경에 빠뜨렸다. 하지만 방송 중 동시간대 케이블 TV시청률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대박을 쳤고, 온게임넷(현 OGN)이라는 게임전문 방송국이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 이후 케이블 방송의 스타크래프트 게임중계는 공중파 시청률까지 위협하며 인기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게임방송 덕분에 사라졌다. 정부는 e스포츠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기술(IT), 인터넷 문화를 장려하자고 방향을 잡았는데 마침 게임이 인기가 좋았다. 2000년 정부가 앞장서서 앞으로 게임방송을 e스포츠라고 부르자고 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문화관광부는 스타크래프트에 출시 2년 동안 ‘연소자 이용불가’ 등급을 내리고 강하게 규제하고 있었다. 1999년 2월 청소년이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적발돼 PC방 업주들이 줄줄이 입건되는 사태가 발생하자 업주 300명이 광화문에서 항의집회를 했을 정도. 하지만 게임중계의 높은 인기에 규제는 축소되고, 지원은 늘어났다.

다른 게임보다 스타크래프트 방송의 인기가 높은 이유에 대해 관계자들은 “동양의 무협과 서양의 판타지를 폭넓게 즐길 수 있도록 돼 있어 한국인의 감성에 잘 맞았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경우의 수가 워낙 많다보니 선수마다 개성이 잘 드러난다는 점도 매력 포인트. 엄재경 e스포츠 해설위원은 “프로게이머의 게임 스타일에 따라서 캐릭터와 별명을 부여했고, 이후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 스타크래프트 주요 연혁

1998년 ‘스타크래프트(오리지널)’ 및 ‘브루드워(확장판)’ 출시
3개월 만에 글로벌 300만 장 판매 기록
1999년 스타크래프트 국내 중계방송 시작(세계 최초). 국내 판매 100만 장 돌파
2002년 서울 올림픽공원 결승전 관중 2만5000명 기록
2004년 블리자드 한국 지사 설립.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결승전 관중 10만 명 기록
2010년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 출시(이하 버전은 게임 스토리만 차별화)
2013년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 출시. 글로벌 누적 판매량 1100만장 돌파(최다 판매 전략PC게임으로 기네스북 등재)
2015년 ‘스타크래프트 2: 공허의 유산’ 출시
2017년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 인간 대 AI 스타크래프트 대회(세종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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