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기정]중소기업에 가라지만 여전히 公기업이 정답

고기정 산업2부 차장

입력 2018-03-28 03:00 수정 2018-03-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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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정 산업2부 차장
공기업 강원랜드에 2013년 입사한 518명 중 226명이 취업 부정청탁 혐의로 이달 말 회사를 나간다. 입사 6년 차들이다. 지난달 5일부터 이미 업무에서 배제돼 있었다. 궁금한 건 이 정도 규모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잘리거나 대기발령 상태에 있으면 회사가 굴러갈 수 있느냐였다. 강원랜드 전체 직원은 3600명 정도다.

이 회사 임원의 설명이다. “226명 중 170명가량이 카지노 현장 직원이다. 카지노 테이블 몇 개 빼면 된다. 큰 문제는 없다. 매출이야 많이 줄어들겠지만….”

민간 기업에서 한 기수의 40%가 한꺼번에 없어지면 곳곳에서 곡소리가 난다. 일손이 달려서다. 신입도 아닌 한창 제 몫을 할 연차의 직원이면 더 그렇다. 그렇다고 사람이 부족해서 매출 목표를 포기하겠다는 부서장이 있다면 그는 함께 짐 싸서 나가야 한다. 그게 민간 회사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 20만 개를 청년 맞춤형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3년간 매년 1000만 원씩 주는 방식이다. 최소한 3년은 대기업 연봉과 비슷하겠지만 그 다음엔 답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을 선택했을 때의 기회비용이다.

강원랜드의 평균 연봉은 약 7000만 원이다. 직원이 무더기로 나가도 업무에 큰 부담이 없을 만큼 항상 넉넉하게 뽑는다. 더구나 현 정부는 공기업 성과연봉제도 폐지했다. 업무 성과를 못 내도 연봉이 깎이는 일은 없다. 그러니 이런 직장을 놔두고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릴 이유가 별로 없다.

공기업 채용 규모도 갈수록 늘어난다. 정부는 올해 공사 3곳을 추가로 만든다.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는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지원을 명목으로 6월 출범한다. 지원공사의 업무가 수출입은행 안에 설치돼 있는 지원센터의 역할과 비슷하다는 말이 나온다. 해운업 재건을 목적으로 하는 해양진흥공사, 새만금 개발을 담당하는 새만금개발공사도 발족한다. 이들 공사는 업종별, 지역별 민원과 연관돼 있다. 국회도 그다지 견제할 뜻이 없다. 설립 반대 의견이 나오기 쉽지 않은 배경이다. 늘 그랬듯 정부 산하기관은 일단 발족만 해놓으면 덩치 키우는 건 일도 아니다.

정부는 민간기업의 채용을 늘리기 위해 일자리 쪼개기를 유도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도 그 일환이다. 일자리를 쪼개면 ‘워라밸’도 가능하지만 월급도 깎인다. 중소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더 악화된다. 그럼에도 청년 실업 해소는 사회 전체가 안고 가야 할 공동 책임이다.

반면 공기업은 그냥 사람을 더 뽑거나 회사를 새로 만들면 된다. 공기업을 관리 감독하는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공무원 17만4000명을 더 뽑기로 했다. 청와대 개헌안처럼 공무원의 노동3권을 완전히 보장하면 공무원의 정치적 입김이 더 세진다.

사회의 총 자원을 재배치하려면 부문별 보상체계를 조정해야 한다. 청년들을 중소기업으로 보내 청년실업도 완화하고 인력난도 해소하려면 중소기업 부문에 대한 보상을 늘려주는 대신 다른 부문의 사회적 보상은 줄여야 한다. 저성장 체제에선 전체 파이가 크게 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보상체계를 차등 조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가난한 중소기업 취업자들이 부자 공기업 직원과 공무원들의 임금을 세금으로 대줘야 하는 구조에선 자원의 재배치는 구호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청년들 입장에선 아무리 따져 봐도 여전히 공기업이 답인 사회다.
 
고기정 산업2부 차장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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