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철강 돌아온다” 지지층 앞에서 재선겨냥 메시지

한기재 기자

입력 2018-03-12 03:00 수정 2018-05-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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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發 무역전쟁]차기 대선 위한 ‘관세폭탄’ 유세

일러스트 서장원 기자
“여러분의 철강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알루미늄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인근의 문타운십에 있는 피츠버그국제공항 격납고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그는 “모든 게 돌아오고 있다”고 수차례 반복하며 “(미국이 지켜낸 철강 알루미늄 석탄 등 산업 규모가) 크다 크다 크다(big big big)!”라고 강조했다.

이 지역은 문 닫은 제철소와 탄광 등이 밀집한 대표적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중 한 곳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꼭 잡아야 하는 이 지역 유권자들 앞에서 자신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성공으로 규정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세계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수입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부과 정책의 시행 목적이 차기(2020년) 대선 승리를 내다본 조치임을 숨기지 않았다.


○ “관세는 나의 아기(my baby)” 외친 트럼프

“나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대학(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을 나왔다”는 말로 유세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하원의원 보궐선거 지원 유세였던 이날 연설에서 1시간 15분간 사실상의 2020년 대선 출정식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가 미국의 독립과 자유는 물론 철강을 주지 않았느냐”며 이 지역에서 제철산업이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는 “월가에 있는 내 친구들은 관세 정책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뒤 “제철소가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우리는 그 효과를 알기에 관세 정책을 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신의 시선이 주류 엘리트가 아닌 러스트벨트의 ‘잊혀진 사람들’을 향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Keep America Great)!’라는 2020년 대선 슬로건을 공개했다. 그는 “선거 날(2020년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다”며 “펜실베이니아가 45대 대통령(자신을 지칭)을 낳았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큰 철강과 알루미늄 얘기에 심혈을 쏟으며 다양한 표현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철강 25% 관세를 부과받은 국가들을 ‘(미국에) 들어와 쓰레기(crap) 같은 철강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고, “(쓰레기 같은 철강과 반대로) 여러분의 철강이 돌아오고 있다”는 말로 국산 철강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 정책을 ‘나의 아기(my baby)’라고까지 불렀다.

최근 관세 보복을 거론한 유럽연합(EU)에 대해서도 “좋은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무역에선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이 먼저 미국 제품에 물리는 관세를 전부 철회하지 않으면 우리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에 모두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며 독일 자동차 회사들을 특정해 거론하기도 했다.


○ 일련의 과격한 정책 “이유 있다” 강조

일러스트 서장원 기자
보호무역 정책 등 그동안의 관행을 깨는 정책들에 대해 국내외에서 격렬한 반대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똑똑하다”며 이유 없는 선택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캐나다와 EU 등이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보는 것은 “그들이 미국 정치인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도 타국이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똑같은 성격의 ‘똑똑한(smart)’ 행보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답게 행동하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도 “대통령답게(presidential) 행동하는 건 매우 쉽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행동하면 다들 너무 지루해서 여길 떠날 것”이라며 과격한 제스처와 정책 추진 방식을 택하는 것은 전략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뒤이어 “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자신이 생각하는 ‘대통령답게’ 행동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조롱조로 따라 하기도 했다.

전임 정부를 겨냥한 공격 수위도 한층 더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원래 ‘관세의 나라(nation of tariff)’였다며 단골 비판 대상인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빌려오고 평소 호평을 아끼지 않았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까지 비판 대열에 올렸다. “레이건 대통령의 스타일과 나라를 위한 ‘치어리더’ 역할은 좋아했다”면서도 “솔직히 무역 정책만큼은 별로였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관세 정책에 대한 (펜실베이니아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는 워싱턴 등 다른 지역의 같은 정책에 대한 (비판적) 반응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을 내세운 유권자 접근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WP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주의 제철소 노동자 수는 20년 전 2만1100명에서 올해 초 1만600명 선으로 급감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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