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들의 집합소’ 디시갤, 최근엔 미투 고발 성지로 주목

김정은 기자 , 김민 기자

입력 2018-03-11 18:27 수정 2018-03-1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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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메인화면 캡쳐.

처음엔 정보통신(IT)기기 품평회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온라인의 온갖 지저분한 사담이 쏟아지는 ‘하수구’로 변질됐다. 그러다 문득 대중문화계 ‘덕후(마니아)들의 집합소’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상을 뒤흔드는 ‘미투 운동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디시갤)’ 이야기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보편화되며 그 기능이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평가받던 디시갤이 최근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세계를 뒤흔드는 미투 운동이 유독 국내에선 이 디시갤을 통해 활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무대는 디시갤의 한 분야인 ‘연뮤갤’(연극·뮤지컬 갤러리)이다. 지난달 20일 연극배우 이명행의 성추행 고발을 시작으로 온갖 폭로가 다 여기서 쏟아졌다. 심지어 지난 25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공연계의 미투 지지 집회 제안도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예능프로그램 갤러리(예갤)’와 ‘영화갤러리(영갤)’도 응답했다. 7일 예갤에는 2011년 가을 개그맨 심현섭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심 씨가 “이미 법정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라며 반발하자 현재 글은 삭제됐다. 앞서 영갤에도 영화감독 이해영을 둘러싼 동성 성추행 폭로 글이 올라와 이 감독이 공개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일상이 된 SNS가 아닌 디시갤이 이런 사회적 진원지가 된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익명성’을 꼽았다. SNS는 누리꾼들이 맘먹고 추적하면 금방 신분이 드러난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런 폭로가 의도와 달리 ‘2차적 가해’로 돌아오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며 “디시갤은 자신이 원하면 익명으로 가해자를 고발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고 짚었다.

특히 디시갤은 문화계 덕후라면 꼭 들리는 ‘살롱’의 성격을 지녀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기 쉽다. 연뮤갤의 경우 이용자 대부분이 덕후나 업계 관계자들이다.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미 내막이나 소문을 아는 이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용이한 구조였다. 원 교수는 “특정 장르에 해박한 이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라 이름의 초성이나 활동 이력만 거론해도 바로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어 ‘폭로 효과’가 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SNS과 디시갤의 폭로 형태를 비교하면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페이스북 등은 비교적 가벼운 성추행 고발이 많은 반면, 디시갤의 글은 굉장히 수위가 높다. 연희단거리패 전 단원 김보리 씨(가명)의 폭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성폭행이나 마사지 장면을 여과 없이 세세하게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경찰 관계자는 “SNS는 사실을 적시해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디시갤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공간이란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시갤이나 대학 익명게시판이 폭로의 소통창구 역할을 한 것을 ‘공동체의 결속’이란 측면에서 들여다봤다. 구 교수는 “결국 고백이 힘을 얻으려면 같은 부류의 지지나 공감을 통해 집단적 움직임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앞으로 이런 폭로가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려면 관련 조직이나 기구를 통한 체계적 사례 수집과 대처 방안 마련이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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