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연분홍 그리움에 섬진강이 꽃잔치 열었네

조성하 전문기자

입력 2018-03-10 03:00 수정 2018-03-1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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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광양 매화마을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백운산 자락 산기슭을 덮고 있는 매화. 멀리 섬진강이 빚어 놓은 하얀 백사장과 멋진 어울림으로 다가온다. 그 매화와 섬진강 사이에 다소곳이 산기슭에 자리잡은 장독대. 이 모두가 홍쌍리 명인이 51년 동안 이룬 청매실농원이다. 사진은 지난해 촬영한 것이다. 박준규 여행작가 제공
《올봄엔 그 어느 해보다도 꽃 소식이 간절하다. 전대미문의 혹한에 데어서다. 지난달 27일 구례 광양은 봄날처럼 따사로웠다. 봄볕 쬐며 털 고르는 고양이의 한가로움이 돋보였다. 겨울의 긴장도 줄줄줄 녹아내렸다. 물론 들판의 아지랑이는 여전히 연목구어고 매화와 산수유는 여태 나목의 빈한함 그대로였지만. 그럼에도 화신(花信)은 분명했다. 광양 매화축제, 구례 산수유꽃축제 알림장이다. 한 주 간격을 두던 평소와 달리 올핸 동시 개막(17일). 미리 찾은 축제 현장으로 안내한다.》


매화를 딸처럼 아들처럼 돌보는 홍쌍리 명인. 51년 매실농사는 꽃다운 새댁의 섬섬옥수를 이렇듯 포클레인처럼 만들었다. summer@donga.com
혹시 기억하는지…. 이메일 주소를 처음 만든 게 언젠지. 1998년이다. 대개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일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실제는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비슷한 게 또 있다. 일주일 새 130만 명(2017년)이 찾는 광양매화축제다. 역시 1998년 시작됐다. 섬진강변 가파른 산비탈에 매화 만발의 선경. 그전엔 없었다. ‘아름다운 농사꾼’ 홍쌍리 명인(名人·75)이 없었다면 지금도 그럴지 모를 일이다.

명인(名人)이란 한 분야 최고 장인에 대한 정부 공인의 타이틀. 그는 ‘한국 전통식품’ 부문 1호다. 매실 농사에 그치지 않고 수십 가지 건강식품, 그것도 전문가 도움 없이 홀로 연구해 개발한 공로다. 더불어 많은 농민이 매실 농사에 뛰어들어 이걸 부흥시킨 점도 포함된다. 그걸 이루는 동안 쏟은 노고와 고초. 그걸 알려면 명인의 손부터 살펴야 한다.

그 손은 오늘도 매화나무 꽃길에 돌담을 쌓고 있다. 51년 전 밤나무 베어내고 그 자리에 매화나무 심은 것도 그 손이다. 두 손 두 발로 기어올라야 할 만치 가파른 산등성에 집 짓느라 쌓은 석축, 매화 진 뒤에도 꽃구경 하라고 심은 야생화, 산꼭대기 나무 매실을 어렵사리 딴 것 역시 그 손이다. 사람들 속 편케 해주자는 일념으로 매실 넣어 된장 고추장 장아찌 담가온 그 손. 건강은 물론 농민까지 도운 ‘신의 손’이다.

매화란 꽃. 그녀만큼이나 유별나다. 설중매(雪中梅) 한중매(寒中梅)란 이름대로다. 겨울 한기를 햇볕 삼아 피니 진정한 ‘꼴통’이다. 그런데 바로 그게 세상 모두가 매화에 집착, 탐닉하는 이유이니 특별하다 할밖에. 고난 핍박을 코웃음 치는 처연 지극 인고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섬진강변 산비탈을 매화 꽃 대궐로 일구겠다는 그녀의 서원도 거기서 왔을까. 아니다. 그 대답이 엉뚱하다. ‘사람이 그리버서(그리워서)….’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사연은 이렇다. “스물네 살 다 큰 부산 가시나가 산자락에 기(어)들어가고 기(어)나가는 초가집에 시집오니께 마을 사람들이 다 그 캅디더. 저년이 여길 언제 뜨는지 보자꼬.” 그런데 도망을 가려 해도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몰랐단다. 시집은 뒷산에서 매화나무 밤나무로 농사를 지었다. 그 나무는 열일곱에 일본 광산으로 돈 벌러 간 시아버지가 13년 만에 돌아오면서 번 돈을 톨톨 털어 사온 것. 1960년대 밤은 두 가마로 쌀 한 가마를 바꿀 만큼 수지맞는 농사였다.

그런데 새파란 며느리가 다짜고짜 잘라내고 매화나무를 심자 했다. 집안은 물론 동네가 시끄러웠다. 이유가 그거였다. 사람 구경 좀 하자는. 봄이면 새댁의 심란은 더했다. 사람들로 벅적대던 진주 벚꽃 장(축제) 생각에…. 그리운 건 벚꽃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활달한 성격에 누구와도 잘 어울린 만큼 산골에서 밤나무 돌보며 지내기는 고역. 그래서 새봄에 꽃만 피면 그 앞에서 눈물을 흘렸단다.

매화나무를 더 심자 한 건 그 꽃이 사람을 끌어들일 거란 생각에서다. 자세히 보니 벚꽃보다도 훨씬 예뻤다. 그게 온 산을 덮으면 너도나도 여길 찾아올 게 아닌가 싶었다. 그즈음 용기를 북돋워준 이가 있었다. 열반하신 법정 스님이다. 이 산 매화 보러 이따금 들르던 중 하루는 이렇게 일렀단다. 밤나무 베고 매화나무 심으라고. 꽃도 보고 열매도 거두는 미래를 내다본 예지의 고언이었다. 완강히 반대하던 시아버지도 결국은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 밤나무 산비탈이 매화나무로 무성해졌다. 그런 매실 농사가 올해로 51년째다.

“올해 칠십다섯(살)이지만 아직도 열아홉 살 바람난 가시나처럼 산에서 일합니다.” 홍 명인은 지난달 28일에도 이른 아침부터 산비탈에서 일하고 있었다. 새로 쌓은 돌담을 예쁘게 정리하는 것인데 담 밑엔 이미 클로버 씨가 뿌려졌다고 했다. 차나무와 꽃나무도 심어진 상태고.

“산에서 일한 게 벌써 반백 년, 그렇다 보니 저 매화꽃이 딸맨치로(처럼) 아들맨치로 보입니다. 또 아침 이슬은 나의 보석, 저 흙은 내 밥상이고 이 자연은 천국, 나는 거기서 천사가 됩니다. 그러다 마음에 찌꺼기가 생기면 저 섬진강에다 몽땅 버리삐립니다. 그리고 꽃같이 활짝 웃으면서 아름다운 꽃향기 가슴에 가득 보듬어 안고 산을 내려오지요.”

이 겨울 같은 봄, 사람들은 꽃에 홀려 광양 매화마을로 향한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무엇이든 영속하는 건 없다). 그 꽃도 보름을 넘기지는 못한다. 그러면 축제 중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북적대던 청매실농원도 썰렁해진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정적의 그때가 농원을 찾을 최적기가 된다. 아름다운 농사꾼 홍 명인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다.

청매실농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그녀 자신이다. 닳고 닳은 부삽마냥 뭉툭해진 손끝, 대나무처럼 변해 버린 굵디굵은 손가락 마디마디는 그 향기고…. 매화 향은 너무 옅어 있기나 한지 의심케 한다. 그런 ‘암향(暗香)’은 코로 맡지 못해 ‘귀로 듣는다’(聞香·문향). 생전 이 봄이면 길상사에서 매화차를 드시던 법정 스님이 어느 해 들려주신 말씀이다. 향기가 이럴진대 꽃은 또 어떨꼬. 매화는 벚꽃마냥 해바라기도 않는다. 되바라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주하기도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그런데 홍 명인이 딱 그렇다. 인품, 삶, 생각이 모두 매화를 똑 닮았다. 본인은 가방끈이 짧다지만 자연만 한 스승이 없으니 그건 전화위복의 행운이라 할밖에.

여행정보


광양매화축제:
17일(토)∼25일(일) 9일간.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 일대 매화나무 과수원이 모두 무대다. 하지만 그 중심은 홍쌍리 명인이 대표로 있는 ‘청매실농원’. 활짝 핀 매화로 꽃 대궐을 이룬 산비탈의 과수원 꽃길 산책이 테마다. 휴일 주말엔 밀려드는 인파로 여유로운 꽃 감상이 쉽지 않다. 주중 방문이 정답이다. 지난해부터 홍 명인은 과수원 산책로에 돌담을 쌓고 있다. 그런 만큼 올봄 청매실농원 매화꽃밭은 과거와 다를 걸로 예상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청매실 추출액을 넣은 아이스크림이다. 섬진강변 다압면의 허다한 매실농원 중에 이걸 맛볼 곳은 여기뿐이다. ▽축제장: 전남 광양시 다압면 지막1길 55 ▽관광정보: www.gwangyang.go.kr/tour ▽청매실농원: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414. 061-772-4066, www.maesil.co.kr

연인의 길: 청매실농원 꽃길로 접어드는 별도 접근로. 들머리는 청매실농원 앞 지방도 803호선 따라 강 상류로 4.2km 지점의 소학정. 널찍한 주차장 한편에 ‘연인의 길’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 길로 접어들면 농원의 산비탈 꽃나무 길로 이어진다. 소학정에 오르면 섬진강과 강변 풍광이 두루 조망된다.

맛집: ◇해돋이식당: 섬진강 하구의 명물 재첩국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강변식당. 직접 채취한 재첩으로 끓여 내서다. 참게탕 메기탕도 낸다. 청매실농원 근방(다압면 도사리 594-2). 061-772-1898

철도상품: 하루 일정. 해밀여행사(www.tourkorail.com) 1577-7788 ◇KTX 광양매화축제+전주한옥마을: 용산역(오전 7시 15분 출발)∼남원역(버스)∼청매실농원∼전주(한옥마을·KTX)∼용산역. 9만7000원(주중·어른 기준) ◇전라도 정도(定道) 천년 기념 ‘전라도 방문의 해’ 매화·산수유 꽃축제 특별열차: 축제 중 2회(17, 24일) 및 31일 등 총 3회. 서울역(오전 6시 20분 출발)∼남원역 철도 왕복(무궁화호·각 회 400명). 남원역 하차 후 버스투어는 광양매화축제(6만9000원)와 구례산수유꽃축제(6만8000원) 두 코스로 제각각 진행.

▼ 17∼25일 구례산수유꽃축제 ▼

꽃망울 펑펑 산수유따라 걷는 돌담길 ‘운치 만점’


흐드러지게 핀 산수유꽃으로 뒤덮인 구례 산수유꽃 축제장의 반곡마을. 지난해 촬영한 것이다. 동아일보DB
2월 말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 겨울비 같은 봄비에 산수유나무 앙상한 가지가 더더욱 초라했다. 지리산 자락에 감돈 봄기운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봄은 와 있었다. 닷새 후 촬영사진을 보니 나무에 노란빛이 감돈다. 산수유 꽃망울이 펑펑 터지고 있음이다. 오늘은 그 닷새째. 빛깔은 더 진할 것이다. 이즈음 화신은 당연한 현상. 그럼에도 올봄은 그렇지가 않다. 혹한 탓이다. 그래서 기적인 듯 반길밖에.

권컨대 올봄 꽃놀이라면 남도의 섬진강이 제격이다. 광양매화축제와 동시에 구례산수유꽃축제(17∼25일)가 열려서다. 구례산수유꽃축제는 ‘산수유 꽃길 따라 봄 마중하기’란 슬로건 그대로다. 노란 꽃 흐드러지게 핀 현천, 반곡, 상위 세 마을을 찾아 새봄의 생기를 내 몸과 마음에 불어넣는 이벤트다.

자그마한 저수지를 낀 현천마을에선 수면에 반영된 꽃이 볼거리. 반곡마을에선 운치 만점의 산수유 돌담길이 매력이다. 예쁜 계곡의 상위마을에선 산수유나무 군락을 만난다. 이어 언덕 중턱 산수정에선 온통 노랗게 물든 계곡(서시천) 안 산수유마을이 조망된다. 물론 이 마을이 아니더라도 산수유나무는 지천이다. 축제의 번잡함이 싫다면 여길 피하는 것도 요령이다.

문화관광해설사인 택시기사 임세웅 씨의 제안이 귀를 솔깃하게 한다. 지리산둘레길(주천∼산동 구간 중 산동면 계척리의 견두산 등산로 입구에서 시작)과 백의종군로(남도 이순신길·산수유 시목지∼지리산호수공원∼구례5일장 강변길)를 걸은 뒤 축제장에 가는 것이다. 걷기 총연장은 5.1km.


구례 산수유꽃축제: 17∼25일(9일간)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관광지 일대. 올해는 입장료(1000원)를 받는다. 6·13지방선거 운동기간엔 무료입장이 금품 제공 행위로 규정된 탓. 그 대신 1000원 상당 농산품상품권을 선물로 준다. 축제 땐 교통약자용 셔틀버스(25인승·2개 코스)도 운행.


▽축제장: 구례군 산동면 관산구산길 14-9


▽축제: www.sansuyu.go.kr/sanflower

▽관광안내소:
지리산온천관광지 입구 061-780-2450, www.gurye.go.kr

광양(전남)에서·구례(전남)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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