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격의 경영]격리 대신… 치매환자에게 ‘자유로운 삶’을 선물하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이미영 기자

입력 2018-03-05 03:00 수정 2018-03-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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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日의 노인의료 사례
환자 위한 우체국-식당 등 갖춘 가상마을 만들어 일상성 보장
전화 한 통이면 의료진이 방문… 집에서 편안하게 돌봄서비스


20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에 문을 연 치매환자 전문 돌봄시설 호헤베익 마을에선 치매환자들이 자유롭게 문화생활과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다. 출처 호헤베익 마을 홈페이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엔 호헤베익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우체국, 미용실, 레스토랑 등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주민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다. 이들은 마을 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마켓에서 장을 본다. 얼핏 보면 요즘 유행하는 ‘시니어 타운’과 흡사한 모습이다.

사실 호헤베익 마을은 2009년 치매환자를 위해 간호사 출신의 이보너 판 아메롱언이 만든 가상마을이다. 마을 안에 상주하는 가게 점원, 경비원, 우체부 등의 역할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가 맡는다. 이들은 치매환자의 삶에 최소한으로만 개입하고 자유와 일상적인 삶을 보장해준다.

호헤베익 마을에 입주한 환자는 취미생활, 문화활동을 한다. 경과도 좋다. 다른 치매 요양 시설의 환자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 치료를 위해 투여하는 약물의 종류와 양도 감소했다. 무엇보다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높다.

일반적으로 치매를 다루는 병원은 환자를 바깥세상에서 격리시킨다. 요양병원이나 집 밖을 나서지 못하게 한다. 호헤베익 마을은 치매환자도 일상생활을 누리고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치매환자 돌봄 서비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한 셈이다.

호헤베익 마을뿐이 아니다. 평범한 주거공간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환자들의 일상성을 보장해 주려는 노력은 역사가 길다. 일본 히로시마현에 위치한 미쓰기 공립병원이 대표적이다. 미쓰기 병원은 1970년대부터 약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등을 노인 환자들의 집으로 직접 보내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 뇌질환 수술을 받고 퇴원해 집으로 돌아간 노인이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누워만 있다가 몸이 쇠약해져 다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사후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미쓰기 병원 의료진은 ‘와상 환자(누워 지내는 환자) 제로 작전’ ‘방문 간호사 제도’ 등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고안했다.

미쓰기 병원은 우선 환자가 일상 속에서 자신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전화 한 통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음식 배달처럼 의료 부문도 의료진이 환자를 찾아가 서비스를 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토대로 병원과 지방자치단체, 지역 주민이 함께 노인 환자의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지역 포괄 케어 시스템’도 정착시켰다. 미쓰기 병원의 사례는 일본 노인 의료 복지 서비스의 원형이 됐다.

현대의 병원은 환자를 긴장시키는 형태다. 환자가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고통의 신음소리와 숨 가쁜 움직임, 팽팽한 긴장감 등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러한 분위기가 더 병원답고 전문성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치료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 음악이 흐르는 따뜻한 카페 같은 병원, 내 잠옷을 입고 잘 수 있는 병원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국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치매, 뇌질환 등 노인 질병의 의료 서비스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정부도 ‘치매 국가책임 제도’를 내걸었다. 각종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확대하는 등 인프라 확충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노인 환자에겐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도 중요하다. 네덜란드 호헤베익 마을과 일본 미쓰기 병원의 사례는 노인 의료 서비스의 양도 늘리고 질도 높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김진영 연세대 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kimjin@yuhs.ac·정리=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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