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스펜스 “먹는 양 줄이려면 빨간 그릇 써보세요”

동아일보

입력 2018-03-01 03:00 수정 2018-03-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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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감각 관계 연구하는 스펜스 옥스퍼드대 교수

“조명이 바뀌면 커피 맛도 달라져요.” 찰스 스펜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커피 잔을 조명에 비춰 보이고 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지만, 음식에 정통한 감각 심리학자와 평양냉면집에 가는 일이 그중 하나일 줄은 몰랐다. 찰스 스펜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와 서울 중구에 위치한 유명 평양냉면집에 갔다. 스펜스 교수는 소리나 빛, 식기의 무게 등 식사와 관련된 다양한 감각이 맛에 미치는 영향을 세계 정상급 셰프들과 연구해온 심리학자다. 그와 공동 연구한 셰프들의 미슐랭 별 수만 합쳐도 두 자릿수가 훌쩍 넘는다. 불고기로 1차 식사를 한 그와 함께 냉면을 주문하며 식당의 분위기를 물었다.

“시끄럽긴 한데 활기찬 느낌이 있네요. 소음은 대화를 방해하는 문제가 있지만, 큰 식당에서는 괜찮습니다. 다만 작은 식당이었다면 음악으로 소음을 적절히 가려줘야 할 겁니다. 그런데 한국 식당은 원래 음악을 잘 안 트나요?”

시각적인 면은 아쉽다고 했다. 무절임이 접시에 담긴 모습을 보고 “반찬 플레이팅이 그리 시각적이지는 않다”며 “연구에 따르면 접시 모양이나 색, 크기는 물론 위에 놓인 채소의 방향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그는 채소 줄기가 둥근 접시 위에서 ‘몇 도’ 기울어져 있을 때 가장 맛있어 보이는지를 시민과학 프로젝트로 조사했다. 연구 결과, 채소가 12시 방향에서 시계방향으로 3도가량 기울어진 각도일 때 사람들이 음식을 가장 맛있게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펜스 교수는 괴짜 심리학자로 통한다. 눅눅해진 감자칩을 먹을 때 귀에 높은 톤의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뇌가 감자칩을 15% 정도 더 맛있게 느낀다는 사실을 증명해 ‘괴짜 과학자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이그노벨상을 2008년 받았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 개념을 공학적으로 응용했다. 간이 부족하거나 설탕을 줄인 음식에 소리를 더해 짜거나 달게 느끼게 만드는 ‘음향 양념’ 개념을 주창했다. 음식에 핑크빛 조명을 비춰 더 달게 느끼게 만들거나, 음식의 국적에 맞는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개성과 맛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스펜스 교수는 “셰프들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기뻐하며 바로 다음 주에 연구 결과를 반영한 신메뉴를 내놓는다”며 “빠르고 혁신적인 분야라 연구가 즐겁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감각을 활용해 음식 섭취량을 조절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 반달 모양의 접시에 음식을 담은 뒤 거울에 비춰 동그란 접시에 음식이 담긴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런 뒤 음식을 먹게 하니 실험 참가자들은 뇌가 거울에 비친 음식까지 먹은 것으로 착각해 먹은 양보다 더 포만감을 느꼈다. 이 연구는 이번 달 ‘국제요리및식품과학’에 발표됐다. 한국의 ‘먹방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이 먹방을 자주 보는데, 누군가와 같이 먹는다고 뇌가 착각해 먹는 양을 늘리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위해 몇 가지 힌트를 덧붙였다. 큰 접시는 음식 양을 적어 보이게 해 결과적으로 먹는 양을 늘린다고 한다. 실험 결과 접시 크기가 두 배가 되면 섭취량도 40% 늘어났다. 하나 더. “자꾸 손이 가 원망스러운 간식은 빨간 그릇에 담아 두세요. 빨간색에 대한 회피 본능이 있어 손이 덜 갈 겁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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