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번지는 ‘미투’…떨고 있는 세상의 왕들

양형모 기자

입력 2018-02-22 05:45 수정 2018-02-2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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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감독. 동아닷컴DB

이윤택·오태석 등 연극계 성추문 줄이어
뮤지컬계로 확산…변희석 감독 등 거론


이윤택(66)으로 촉발된 문화계 #미투(Me Too) 성범죄 폭로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이윤택이 누구인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스타 연출가. 명문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대부이자 밀양연극촌·가마골소극장의 예술감독. 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를 지낸 거물이 이윤택이다.

하지만 그와 작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했으리라 여겼던 여성 배우들이 잇따라 이윤택 감독의 성추행, 성폭행 피해를 폭로하면서 그의 끔찍한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다. 배우 김지현, 김수경, 이승비 등이 줄줄이 그의 만행을 알렸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부르면)안 갈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윤택 감독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표명과 함께 사과했지만 피해자와 국민 대다수의 정서는 도저히 이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이윤택 감독을 사른 불은 오태석(78) 서울예대 교수로 옮겨 붙었다. 천재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오태석 교수는 한국 연극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성추행을 견디다 못한 여배우의 “전 선생님 딸 친구예요!”라는 절규가 차라리 연극의 대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극계를 까맣게 태운 불길은 이제 전방위로 번져나갈 기세다. 당장 옆집 뮤지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유명 음악감독인 변희석 감독의 이름이 첫 번째로 거론됐다. 변 감독은 문제가 불거지자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언행에 대해 사과했다.

공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벌써부터 ‘카더라’ 통신이 돌고 있다. 개중에는 연극뿐만 아니라 뮤지컬팬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연출가, 프로듀서의 이름들도 거론되고 있어 충격을 던지고 있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들판을 사르며 저승사자처럼 번져오는 불길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는 ‘세상의 왕’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다 말고, 잊혀지고, 다시 모든 것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미투보다 수십, 수백 배가 넘는 #위드유(WithYou)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계에 붙은 이 불길은 이제 어디로 번져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안됐지만 이번엔 많이 어려울 것 같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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