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실록한의학]<45>내시도 탐했던 뽕잎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입력 2018-02-12 03:00 수정 2018-02-12 03: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어릴 때 누에를 기르는 방에서 낮잠을 잔 적이 있었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갑자기 콩 볶듯 소나기 오는 소리가 들렸다. 밖을 내다보니 햇볕이 쨍쨍. 놀라 소리를 들어보니 누에가 어석어석 뽕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푸른 뽕잎이 만든 짙은 녹음은 뽕밭을 비밀스러운 장소로 만든다. 연산군 10년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실제 이런 ‘뽕밭 밀애’ 기사가 나온다. “내관 서득관(徐得寬)이 잠실(蠶室)을 감독하다가 잠모(蠶母)와 사통하였는데, 그 남편이 사헌부에 고소하여 득관이 죄받게 되었다.” 같은 시기 내시 김세필이 고환을 거세하지 않은 사실이 발각돼 사형을 받은 점은 내시라고 모두 ‘완전한’ 내시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뽕잎을 먹은 누에는 한의학적으로 스태미나에 좋은 약재다. 총각 수컷 번데기를 구워 말려 가루를 내 먹는데 ‘원잠아(原蠶蛾)’라고 한다. 동의보감은 이에 대해 “양기(陽氣)를 굳세게 한다”고 그 효능을 적었다. 드라마에서 허준의 라이벌로 나오는 양예수가 쓴 의림촬요에는 “남자가 맥(맥)이 미약하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데 그것은 정기(精氣)가 멀겋고 차기 때문이다. 이때는 양기석원(陽起石元)을 쓴다”고 썼다. 양기석원 처방의 중요한 약재가 바로 원잠아다. 본초강목에는 “원잠아가 말(馬)과 같은 양기를 포함하고 있어 마두낭이라고 하며 스태미나를 건장하게 한다”는 노골적 표현도 썼다.
뽕나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이른 여름에 열리는 뽕나무 열매 오디는 신장 기능을 북돋워 난청 치료에 도움이 되고 머리털을 검게 한다. 뽕잎은 소갈증(消渴症)에 약효가 크다. 소갈증은 지금의 당뇨병으로 뽕잎을 약간 볶아서 차로 늘 마시면 치료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록이 가장 주목한 것은 뽕나무 가지를 끓여 만든 상지차(桑枝茶)였다. 중종을 비롯해 현종 숙종 영조 등이 갈증을 없앨 목적으로 이를 복용했다. 상지차를 만들 때 가지뿐 아니라 껍질도 함께 끓여 갈증을 달랬다. 중종은 상지차를 복용해 심장에 차오르는 심열(心熱·스트레스)을 내렸다. 반정 이후 중종은 반정공신의 위세에 눌려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속병을 앓기 시작했다.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린 기묘사화로 엄청난 원망을 사기도 했다. 실록은 중종에 대해 “우유부단해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려 진성군을 죽여 형제간의 우애가 이지러졌고, 신비(愼妃)를 내치고 박빈(朴嬪)을 죽여 부부의 정이 없어졌으며, 복성군과 당성위를 죽여 부자간의 은의가 어그러졌다. 대신을 많이 죽이고 주륙이 잇달아 군신의 은의가 야박해졌다”라고 썼다.
심열로 인한 중종의 속병은 날로 깊어졌다. 중종 39년 11월 청심환과 천왕보심단, 양격산 등 심열을 내리는 처방을 잇달아 복용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중종은 결국 꾸준히 먹을 수 있는 처방으로 상지차를 선택했다. 뽕의 가지는 차갑고 쓴맛으로 열을 잘 식혀준다. 상지차는 심열을 달래주는 기능 외에도 살을 빼는 효능도 있다고 전해진다. 동의보감에는 ‘습기를 몰아내어 여위게 만든다. 지나치게 살찐 사람은 오랫동안 먹는 것이 좋다’고 쓰여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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