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반도체로 쓴 ‘황의 법칙’, 이젠 5G로 4차 산업혁명 열겠다”

다보스=동정민 특파원

입력 2018-01-30 03:00 수정 2018-01-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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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30000호]다보스포럼 현지서 만난 황창규 KT 회장

황창규 KT 회장이 스위스 다보스의 한 호텔에서 가진 ‘동아일보 3만 호 발행 기념 특별 인터뷰’에서 향후 KT의 도전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보스=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 “오늘 아침에도 평창에 나가 있는 KT 사장에게 전화했어요. 영하 30도래요. (스위스) 다보스는 눈이 많이 왔지만 그 정도는 아닌데, 고생하는 직원들 특별히 격려해 달라고 했죠.”

세계경제포럼(WEF) 연례회의인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황창규 KT 회장은 26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이야기부터 꺼냈다. 평창 올림픽은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KT가 개발한 5세대(5G)를 선보이는 데뷔 무대다. ‘삼성 반도체의 신화’로 불리는 황 회장은 “‘황의 법칙(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매년 2배씩 증가)’이 PC 시장을 모바일 시장으로 바꿨다면 KT가 주도하는 5G는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2014년 1월 내수 통신기업 수장으로 취임한 후 글로벌 네트워크 플랫폼 회사로 체질을 개선 중인 황 회장을 동아일보 지령 3만 호를 맞아 다보스 현지에서 특별 인터뷰했다.》

―평창에 몇 번이나 갔나.

“한 달에 적어도 두세 번은 간다. 지난 방문 때는 너무 춥다고 해서 직원들에게 발열조끼를 전해주러 갔다. 돌아가자마자 평창에 또 갈 일이 있다.”

―평창 올림픽에 왜 그렇게 공을 들이나.

“일본이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컬러TV 위성중계를 한 후 수십 년간 TV와 반도체 등 전자시장에서 세계 1위를 했다. 이번 5G 임팩트는 그보다 더 클 것이다.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5G를 처음 선보이려고 수십조 원을 투자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선점했다. TV와 반도체 시장을 우리에게 뺏긴 일본 입장에서는 아픈 이야기지만 우리의 노하우를 2년 뒤 일본 올림픽이 성공할 수 있게 공유할 생각이다.”

황 회장은 2014년 취임 이후 가장 보람찬 일을 꼽아 달라는 말에 5G 출범을 꼽았다. 5G 통신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초당 20Gbps(기가비트)로 4G인 롱텀에볼루션(LTE)보다 20배 이상 빠르다. 2019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5G는 4차 산업혁명의 길을 닦는 것이다. 인공지능(AI)도, 빅데이터도,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도 네트워크 판이 깔려야 그 위에 올라올 수 있다. 지금 전쟁이다. 테슬라와 벤츠가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면 5G를 깔아놓은 KT 기지국 내에서 테스트를 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가 한국으로 몰려올 것이다.”

―인더스트리 4.0으로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을 연 독일이 12일 기민당과 사민당 대연정에 합의하며 5G에 대거 투자하기로 했다. 독일도 쫓아오는 건가.

“맞다. 독일 출신인 클라우스 슈바프 WEF 회장도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을 먼저 했지만 4차 산업혁명의 미래로 보기는 어렵다’고 하더라. 독일은 자신들의 강점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수준이었다. 슈바프 회장이 새로 쓸 ‘4차 산업혁명’ 책에서 5G를 많이 강조할 것으로 알고 있다. 5G는 네트워크의 미래다.”

황 회장은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세계 최초로 265D램을 개발해 삼성 반도체 시대를 연 ‘삼성맨’이다. 그는 2009년 퇴사한 뒤 기업이 아닌 국가 사이드로 들어왔다. 2010년 국가 먹거리를 연구하는 지식경제부 지식경제R&D전략기획단 단장을 맡고, 2014년 KT 회장에 취임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2009년 내가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지낸 뒤 삼성을 떠날 때 퇴임식에서 직원 300명을 모아두고 이런 약속을 했다. ‘나는 앞으로 미래 먹거리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할 테니 여러분도 안에서 이것을 고민해 달라’고.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황 회장은 취임 직후 문어발식으로 확장됐던 56개 그룹사를 37개로 줄이고 직원 명예퇴직을 실시하며 부채비율을 40%로 낮췄다. 취임 첫해 4000억 원 넘게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KT는 2015년부터 계속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처음 취임할 때 통신도 모르는 회장이 왔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많았다.

“취임했을 때 KT는 ‘2등 회사’란 패배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모바일 통신시장에서 2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 시장을 잡겠다고 전쟁해봐야 불법 보조금으로 돈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전쟁하러 여기 온 건 아니잖나. 인터넷TV(IPTV) 1등인 회사, 미래 산업 인프라 1등인 회사를 목표로 했다. 미래 산업으로 개발한 게 에너지다. 처음에는 통신회사가 무슨 에너지를 하느냐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KT MEG 플랫폼 기반의 스마트에너지로 인해 지난해 매출 2000억 원을 이뤘고 2020년에는 7000억 원까지 자신 있다.”


―KT와 삼성은 완전히 다른 조직인가.

“둘 다 완전히 다르지만 최고의 인재들이다. KT는 오랜 국가기업으로 배려, 봉사, 책임감 그리고 뭉치는 힘이 크다. 반면 글로벌 경험이 없어 일할 때 벽이 있더라. 취임 후 경영철학으로 ‘도전하고 융합하고 소통하라’고 강조했다. 나부터 직원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직원 4000명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KT는 최근 남중수, 이석채 전 회장 등이 모두 비리 혐의로 곤욕을 치렀다.

“나는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다. KT가 오래된 조직이다 보니 그런 어둠의 잔재가 완벽하게 없어진 건 아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힘이 커지면 없앨 수 있다. 한 신입사원이 특강 때 ‘어떤 회장님으로 남고 싶냐’고 묻기에 ‘KT의 정신을 제대로 세운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KT가 매출 1위 기업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조업보다 월등히 크다. KT의 비전은 ‘글로벌 1등 국민기업’이다. 두 개 다 할 수 있고,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KT는 2002년 민영화가 됐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교체되는 풍파를 겪었다. 정치적 외풍을 받아낼 자신이 있나.

“저는 KT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미래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거 하나로 승부하는 사람이다. 그 외에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황 회장은 2020년까지 해외 매출 2조 원을 비전으로 내걸었다. 지난해부터 슈바프 회장,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로웰 매캐덤 버라이즌 CEO 등 글로벌 리더들과 만나 미래 산업을 논의하고 있다. 이번 다보스포럼 기간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에릭 슈밋 구글 CEO와 만났다.


―다보스포럼에는 기업 CEO뿐만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론 독일 프랑스 영국 정상이 모두 참석했다. 처음 참석한 소감을 알려 달라.

“이제 경제가 사람과 정치도 끌고 가는 시대가 됐다. 다보스포럼은 2년 전 4차 산업혁명, 지난해 포용적 성장, 올해 공유된 미래를 주제로 내세웠다. 모두 미래 어젠다들이다. 정상들이 이곳에 모이는 건 단순히 투자 유치 차원은 아니다. 전 세계 기업, 국제기구, 시민단체까지 다 모여 이런 미래 어젠다를 고민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꿈을 잃어가는 청년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자원이 풍부하고 기초기술이 방대한 건 아니지만 빨리 융합하고 비즈니스를 만들어내는 힘은 최고다. 젊은이들이 도전하는 힘이 좋다. 젊은이들을 ‘네가 배고파봤냐’는 식으로 다그쳐서는 안 된다. 이 아이들은 우리와 할 일이 다르다. 그들이 도전하고 실패하면 우리가 우산 역할을 해주면 된다. 젊은이들을 더 많이 만날 계획이다.”

황 회장은 “1994년 세계 최초로 반도체 256D램을 개발했을 때 동아일보가 가장 먼저 찾아와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실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지령 3만 호를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했다.

다보스=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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