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스와니예’ 이준 셰프 인터뷰… “난면 개발하며 참조한 古조리서에 푹 빠졌죠”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입력 2018-01-25 03:00 수정 2018-01-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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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오너인 이준 셰프. 그는 고조리서 내 조리법과 이를 어떻게 응용했는지 이야기를 담아 한권의 책으로 된 메뉴판을 만들었다. 바앤다이닝 제공
한식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음식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한때 한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거웠는데, 요즘 다시 한식을 이야기하는 요리사들이 늘고 있다. ‘그것이 한식이다 아니다’를 따지던 소모적 논쟁보다는 한결 생산적이다. 의견은 다양하다. 공통적인 건 개인적 경험 또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발전한 의견이라는 점이다.

개인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먹고 마셨던 한식 경험은 수십 년에 걸친 실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다. 한식연구가, 궁중요리 연구가 등 학문적 교양을 갖추고 기술을 계승한 전문가 조언은 사회적 권위가 있으니 이를 근간으로 한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개별 경험에 국한한 의견은 자칫 내 생각만 옳다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전문가에 근거한 의견도 한 사람이 계승하고 단련한 고전 범주에 갇혀 다른 가능성에 소극적일 수 있다.
호박찜
당근김치


이런 점을 고민하며 스스로 수백 년 전 조상의 요리 문화가 담긴 고조리서(古調理書·오래된 조리책) 탐독에 나선 요리사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식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을 가장 많이 받은 요리사 중 한 명으로 미쉐린 가이드에서도 ‘혁신적인(INNOVATIVE)’ 카테고리로 별을 받은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다. 혁신을 찾아 매 시즌 새로운 주제를 정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요리에 그치지 않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온 요리사가 다다른 지점이 500년 전 ‘고전’이라니!

직접 만난 이 셰프는 고전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수운잡방’, ‘임원십육지-정조지’, ‘군학회등’, ‘음식디미방’, ‘음식방문’, ‘규합총서’, ‘산가요록’ 등 조선 시대 초기에서 후기까지 걸친 13권의 요리 서적을 조사했다.

그가 가장 흥분한 점은 서양 조리법으로 배운 요리와 기술이 이미 우리 선조의 조리서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비드(sous-vide)’라 불리는 저온 조리법이나 서양의 대표적 발효 식품인 유제품 조리법을 조선 요리사들은 벌써 쓰고 있었다.

“실로 과학적이고 창의적이에요. 당시 조리 문화가 계속 이어져 왔다면 지금쯤 우리의 한식 문화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고기 굽는 법


책을 통해 수백 년 전 조선의 요리사들과 마주한 셰프는 짧은 행간에 담긴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상상하며 당대 요리사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현대로 온다면 이 부분을 어떻게 요리할까요?”

그리고 자신에게도 물었다. “만약, 내가 조선 시대로 간다면 그때의 상황에서 어떻게 요리했을까?”

그렇게 주고받은 자문자답이 이번 시즌의 에피소드로 이어졌다. 아래는 이준 셰프와 일문 일답.

전복 김치
―한국 고조리서에 빠진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 시즌 요리 중 ‘난면’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고조리서를 참조했다. 현대의 생면 파스타에서 느끼는 면의 식감이 이미 조선 시대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고조리서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시발점으로 많이 탐독하게 되었다. 한식진흥원에서 정리한 한식 아카이브에 저장된 번역본이 많은 도움이 됐다.”
무주의 훈증 돼지고기



―읽는 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영상물도 참고했다. 초반에는 거의 매일 2, 3시간씩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읽다가 한식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안 뒤엔 어디서든 시간 되면 봤다. 한 권씩 읽으면서 관심이 가는 메뉴를 먼저 40개 정도 뽑아놓고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현대어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서는 고어를 비교해서 봤다. 단순한 번역보다는 맥락을 바르게 잡으려고 노력했다.”
옆에서 본 타락



―고조리서에 바탕을 두되 복원이나 재현이 아닌 창조에 애썼다. 작업 과정에서 어떤 점이 어려웠나?


“조리서에 나온 재료가 한정적이어서 코스 요리를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재료의 중복이 많아 선별해야 했다. 궁중음식 전문가나 관련 연구가들 눈에 오류가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점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셰프는 학술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파는’ 요리를 만드는 직업이다. 하지만 전문 연구가들에게 왜곡이 지나치다고 비판을 받으면 보람이 적을 것 같았다. 해서 둘 다 만족시키는 밸런스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스와니예의 요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전제하에 최대한 고조리서를 존중할 뿐이다.”
산삼병과 타락


―뭉클한 순간은 없었나?

“준비하는 동안 ‘이 시대부터 이런 요리 문화가 있었다니’ 하고 탄복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 당시 물어볼 곳도 없었을 텐데 스스로 찾고 생각하는 자세를 견지했던 것이다.”


―발견한 조리법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


“‘군학회등’에서 발견한 고기 굽는 방법이다. 양념을 밀가루로 풀처럼 만들어 고기에 발라가며 굽는 방식이다. 전 같기도 하고 튀김옷을 입히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에 ‘그 구워진 밀가루 껍질을 벗기고 속의 익은 고기를 먹는다’는 문구를 보았을 때 현대의 수비드 조리법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밀가루 풀이 일종의 보호막으로 작용해 열이 고기에 직접 닿는 것을 막고 재료 자체의 수분으로 익히면서 밀가루 풀의 양념이 자연스럽게 고기 속으로 배어들게 하는 방법이다. 고기를 물에 삶지 않고 직화를 이용하지만 고기의 수분을 잃지 않는 방법으로 정말 굉장한 지혜가 담긴 조리법이었다. 실제로 재현 결과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생크림, 모차렐라 치즈, 리코타 치즈, 버터 등이 이미 조선 시대에 제조되었다는 점이다. ‘수운잡방’에서 발견한 타락의 경우 우유를 유산균으로 발효시키는 음식으로 지금의 요구르트나 크렘 프레슈(Cr‘eme fra^iche)가 연상된다. 우유를 세 배로 졸여 농축시킨 다음에 탁주의 침전물을 넣어 발효시킨 것이다.”

고조리서 한식을 주제로 한 스와니예의 열여섯 번째 이야기
―조선시대에 간다면 어떤 요리를 해주고 싶나?

“타임머신을 타고 궁중으로 간다면 버터를 이용해 고기를 구워주고 싶다. 그 시대에도 버터(당시 이름은 수유)가 있었다고 하니 왕을 위한 고기 요리로 가마솥에 수유와 백미향(타임), 마늘을 넣고 버터 섞인 육수를 끼얹어 가면서 고기를 굽는, 지금의 프렌치와 같은 고기 조리법을 고안했을 가능성이 절대 없었을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또 팥소랑 버터를 같이 이용해서 떡에 넣어 만들어 주고 싶다.”

―끝으로 젊은 요리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은 젊은 요리사들이 재미있는 걸 많이 했으면 좋겠다. 내 경우 7년 만에 이런 작업을 하게 됐는데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젊은 요리사들은 나보다 빨리 재미있는 작업에 도전했으면 한다. 따라하지 않고 창작에 애쓰면 궁지에 몰리게 되고 그러면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 ‘열정’이 있으면 자극이 생긴다. 욕심을 부려라.”

조선 시대에도 우유를 저장하기 위해 ‘수유(버터)’를 만들었고, 희소성 때문에 임금 수라상에 올랐다. 전통 방식으로 만든 버터를 오늘날 한식에 이용한다면 사람들은 이것을 한식이라고 할까? 프렌치라고 할까? 퓨전이라고 할까? 이준의 이번 ‘고조리서 한식’은 이런 질문을 던져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이번 코스 요리가 만든 가장 맛있는 경험은 이 질문에 있지 않을까. 그의 요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새롭게 창제하면서도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은 조선의 문학가 연암 박지원이 주창하면서 강조되었는데 단순한 모방을 경계하며 문체의 혁신을 추구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책이 ‘열하일기’다.

‘창신이 지나치면 상도를 벗어나기 쉽고, 법고가 지나치면 옛 자취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법고와 창신을 병행하면 오늘날에도 고문과 같은 훌륭한 글을 지을 수 있다’는 연암의 가르침이 그의 요리 너머 들리는 듯했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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