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7>로힝야, 하느님의 현존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입력 2017-12-20 03:00 수정 2017-12-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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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현존은 오늘, 로힝야라고도 불립니다.” 12월 1일, 난민들을 만난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에서 ‘로힝야’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미얀마에서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만났을 때도,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을 만났을 때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아예 사용하지 않기로 했던 말이었다. 미얀마 인구의 약 1%에 해당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미얀마 가톨릭주교회의가 신신당부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미얀마 정부와 다수의 불교도들에게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이민자들이지 인종적, 정치적 실체를 인정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교황은 미얀마 정부와 군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인종청소에 대한 우려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그가 ‘로힝야’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실망의 목소리를 냈지만 현명하고 실리적인 결정이었다.

그는 미얀마 방문을 마치고 방글라데시로 가서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16명의 로힝야 난민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교황을 만나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인사만 하고 바로 나가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난민들을 빨리 내보내려고 서둘고 있었다. 교황은 그런 식의 연출에 화가 나 호통을 쳤다.

그는 난민들을 내보내는 것을 가까스로 막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저 사람들을 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마이크를 달라고 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을 박해한 모든 사람들, 여러분에게 사악한 짓을 한 사람들, 특히 이 세상의 무관심을 대신하여, 나는 여러분의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그는 울었다. 교황으로서 체통을 지키려고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난민들도 울었다. 미얀마 군대에 부모 형제를 잃은 열두 살 소녀의 멍한 얼굴 앞에서 그는 무너졌다.

그는 세상을 향해 말했다. ‘마음을 닫지 맙시다. 얼굴을 돌리지 맙시다. 하느님의 현존은 오늘, 로힝야라고도 불립니다.’ 예정에 없던 즉흥적인 말이었다. 그는 ‘로힝야’라는 말을 입에 올림으로써 그때까지 충실히 따랐던 대본을 더 이상 따르지 않았다. 이슬람 난민들의 비참한 얼굴은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인간을 빚은 신의 형상이고 현존이었다. 그 순간, 그가 따른 것은 대본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진짜 대본은 예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로힝야’들한테 한없이 따뜻했던 예수, 며칠 후면 그가 태어난 날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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