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서울의 체인점 커피, 너무 비슷한 맛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입력 2017-12-05 03:00 수정 2017-12-0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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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역사책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에 커피가 한국에 들어왔다. 이 생소한 혼합물은 가배라 불렸다. 고종황제는 이것을 즐겨 마셨고, 다른 다과와 같이 들기 위해 경운궁(현재 덕수궁) 내에 사바틴이라는 유명한 러시아 건축가로 하여금 정관헌 건물을 세우게 했다.’ 커피는 한국 역사에 그렇게 스며들었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다.

1996년 7월 중순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경기도 파주에 살게 되었다. 그때 커피를 마시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인스턴트커피 또는 원두커피. 전자는 일명 ‘다방커피’라고 불렸고, 대부분의 회의 때 이 커피를 받았다. 무조건 설탕과 프림이 들어가 달고 크림 같은 맛만 났다. 후자는 커피숍이나 카페에서 제공되고, 인공 헤이즐넛 향기가 들어 있었으며 투명해 보일 정도로 연했다. 커피 애호가인 나는 절망했다(물론 고급 호텔에서는 1만 원 이상의 가격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었다).

나는 호주 멜버른에서 자랐다. 멜버른은 19세기 말 금주운동 때문에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 역사가 있다. 술을 팔지 않고 커피를 만드는 곳도 이때부터 생겼다. 하지만 당시에는 커피콩을 볶고 커피를 끓이는 과정이 많이 발전하지 못해 아주 맛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 덕분에 멜버른의 커피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멜버른에서 대부분의 카페는 자영업이다. 2000년 초에 유명한 미국 커피 체인점이 호주에서 문을 열었지만 멜버른에서는 큰 성공을 보지 못했다. 몇 곳이 있었지만 폐업했다.

우리 가족이 네덜란드 출신이기에 우리도 커피를 꽤 진지하게 생각한다. 편의상 주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긴 했지만, 종류를 엄격히 구별해서 샀다. 대학 다닐 때 친구 소개로 카페라테,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롱블랙 등 커피의 종류를 알게 되고, 졸업할 때 커피 마니아까지는 아니지만 맛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아마추어 커피전문가 정도는 되었다.

어릴 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지 나는 카페인에 영향을 잘 받지 않는다. 진한 커피를 마셔도 바로 낮잠을 잘 정도다. 그래서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커피 맛을 즐기기 위해 마시고, 따라서 커피의 질을 꽤 따진다. 아내는 카페인에 다소 예민한 편이었지만, 신혼 첫 4년을 멜버른에서 살면서 커피를 배운 덕분에 나 못지않게 커피 맛에 까다롭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커피메이커, 커피 분쇄기, 2kg의 커피콩까지 사올 정도다.

우리가 호주에 있던 1999∼2004년 한국에서는 커피붐이 일었다. 거리마다 커피숍이 생겼다. 에스프레소는 물론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핸드드립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도 생겼다. 그 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 서울에는 커피가 흘러넘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거리에는 4가지 종류의 카페 체인점이 몰려 있을 정도다.

그리고 많은 퇴직자들이 시장조사도 제대로 못한 채 커피사업에 뛰어드는 현상도 보였다. 이런 현상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많은 카페들이 오래가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든다. 커피 공급이 과잉인 탓에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데 커피에 대한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보니 가게마다 맛의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격도 멜버른보다 상당히 높고 질보다는 양, 인테리어로 승부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아내, 동료, 친구들과 같이 다니면서 커피를 훌륭하게 만드는 몇 군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커피를 정말 즐겁게 마실 수 있다. 대부분은 체인점이 아닌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거기 단골손님이 되고난 후에는 바리스타를 알게 되고 서로 마주 보고 얘기하면서 마치 동네 가게를 이용하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느낌, 가치, 커피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큰 커피 체인점까지 가서 커피를 사 마시는 모습이 어떨 때는 안타깝게도 여겨진다. 물론 각자 취향 문제이겠지만….

가끔 커피 가게끼리의 경쟁이 이렇게 심한데 내가 좋아하는 커피숍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체인점 대신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커피점을 찾아 나만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어떨까?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업무환경개혁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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