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왕따 군병원… 죽어야 산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입력 2017-11-23 03:00 수정 2017-11-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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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인력의 체질 개선을 해야 군병원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사진은 군병원 가운데 최고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국군수도병원.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최근 무릎 수술을 잘하는 병원을 추천해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았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부대에서 축구를 하다 무릎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민간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싶다는 얘기였다.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수술비용이 무료인데 굳이 개인이 병원비를 내면서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군병원의 실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라졌다고 군에서 아무리 주장해도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은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가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가 군병원 대신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은 국내 군 의료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귀순 병사의 총상과 관련해 일반적인 궁금증을 문의해도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곳이 군병원이다. 군에서 많이 발생하는 총기 및 폭발물 사고의 치료법과 대처 요령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은 군병원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실제 그들이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솔직히 잘 모르는 것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군병원 가운데 최고의 병원이라는 국군수도병원조차 근무하는 의사의 90% 이상이 전문의를 따자마자 군의관으로 임관한 이들이다. 의무복무 3년 동안만 있을 곳이니, 이런 구조에서 의료기술이 축적된다면 오히려 신기한 일일지 모른다. 임금도 높지 않다. 군의관으로 군병원에 근무하면 대략 300만∼400만 원의 월급을 받는다. 최근에는 민간병원의 실력 있는 의사들을 영입하려고 연봉 1억 원을 내걸었지만 응모하는 의사가 많지 않다는 후문이다. 계속 군병원에서 근무할 때 얻는 추가적인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군병원의 인력구조는 기형적이다. 군병원 의사는 모두 2400여 명이다. 이 중 단기 군의관이 2200여 명으로 90%가 넘는다. 반면 간호사 인력은 총 1000명이 채 안된다. 민간병원에선 간호사 인력이 의사의 3배 이상 된다. 결국 군병원에선 의료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의무병 2000여 명이 부족한 간호사를 대신하는 셈이다.

필자가 혹시라도 잘못 알고 있다면 국방부가 제대로 알려주기 바란다. 의료계 쪽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필자도 군병원의 누가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는지, 또 어떤 좋은 시설을 새로 들여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군병원은 홍보 자체가 금지돼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을 물어봐도 ‘국방부로 공문을 보내 달라’는 말이 돌아오기 일쑤다. 민간인이 군병원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병원 시설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 또 얼마나 훌륭한 의사들이 포진해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국방부가 의학 분야 담당기자들을 초대해 설명해주면 좋겠다.

미국 군병원과 관련해 인상 깊은 사건이 있다. 2011년 아이티 지진으로 약 20만 명의 주민이 사망하는 참사가 생겼을 때 미국은 뛰어난 의료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미 해군지휘병원선 ‘컴퍼트호’를 파견했다. 종합병원 못지않은 수술장과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이 가능한 최신 의료장비들을 갖췄다. 또 미국의 의학전문기자인 산다이 굽타가 지진 당시 머리 손상을 입은 아이티 꼬마를 미 해군함정에 마련된 수술장에서 수술해 큰 화제가 됐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미 해군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그만큼 미 해군병원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공인돼 있다.

우리는 어떤가. 아쉽게도 국가공공의료의 중추기능을 담당하는 국군수도병원뿐 아니라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보훈병원, 국립경찰병원 등은 모두 중증질환을 다루는 상급종합병원에 포함돼 있지 않다. 중소병원급에 해당하는 2차 병원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박재갑 국립암센터 초대원장은 군병원의 의료 발전을 위해 국방의대를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말대로 국방의대를 추진했다면 지금 국군수도병원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박 전 원장은 지금도 국방의대 설치를 위해 뛰고 있다. 최근 논의되는 소방병원 신설 검토 시 국군수도병원의 법인화 등 공공의료기관 혁신방안을 함께 논의해 달라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내기도 했다.

국방부는 얼마 전 총상 등 중증외상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2020년까지 ‘국군 외상센터’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드웨어만 키우는 게 능사가 아니다. 민간병원에 건립된 외상센터조차 인력을 구하지 못해 힘들게 꾸려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군병원 의료 인력의 질을 높이고 체계적인 인력공급시스템 마련이 우선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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