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김동연의 검은 고양이와 물갈이論

최영해 논설위원

입력 2017-11-02 03:00 수정 2017-11-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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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근 무역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김인호는 김영삼(YS) 정부 임기 말인 1997년 2월 이석채 후임으로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다. 전임 이석채는 정보통신부 장관을 하다가 청와대 경제수석을 했고, 김인호는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뒤 청와대 경제수석이 됐다.


시장주의자 김인호의 일갈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외환위기 때 YS 정부 마지막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는 김대중(DJ) 정부 출범 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불려가 혹독한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그가 대통령에게 외환위기 실상을 축소 보고했다며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로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을 때까지 6년이 걸렸다.

시장주의자 김인호가 최근 임기 4개월을 남기고 무협 회장직을 떠나며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남긴 일갈이 ‘시장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민간 협회장까지 날리는 관치(官治)의 권력자를 겨냥한 말로 들렸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아닌 더 높은 곳에서 온 신호라면 청와대를 가리키는 것 같다. 권력의 쓴맛을 톡톡히 봤던 그는 이석채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이명박(MB) 정부 임기 말 KT 회장에 연임된 이석채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버티다 권력 눈 밖에 났다. 6명의 부장검사가 달라붙어 103억 원 횡령배임죄로 기소한 이 사건에 이석채는 변호사 7명을 고용했다. 1심 무죄, 2심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올 5월 대법원 무죄 판결 때까지 3년 9개월 동안 수사와 재판으로 국가 공권력에 맞서 힘겹게 싸워야 했다. 변호사 비용만 10억∼20억 원은 들었을 것이다. 금전적 손실도 컸지만 그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법원 판결문을 읽어보면 검찰이 얼마나 무리하게 수사했는지 곳곳에 드러난다. 그러나 결과는 상처뿐인 승리였다.

서울 삼청동 감사원 별관 건물에 있는 특별조사국은 장차관 등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캐는 곳이다. 공직자 직무감찰을 책임진 이곳은 평생 공직을 지낸 관료들의 마지막 명예를 지켜주는 역설적인 곳이기도 하다. 장관이나 차관이 느닷없이 ‘일신상 이유’나 ‘후배를 위한 용퇴’라고 물러나는 경우 여기서 뭔가 비리를 잡아냈을 가능성이 있다. 비리 당사자를 불러 놓고 ‘옷을 벗지 않으면 검찰에 넘기겠다’고 하면 십중팔구 사퇴를 택한다고 한다. ‘저승사자’ 감사원과 검찰의 흑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공기업 사장 인선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지난 정권에 부역한 적폐기관장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오랜 관료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권력의 힘을 느낀다. 자리를 지키려 할 경우 감사원 검찰이 들이닥쳐 조직이 망가질 각오를 해야 한다. 제2, 제3의 김인호, 이석채 같은 사람이 또 나올 수도 있다.


적폐청산 부메랑 주시하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국정감사에서 중국의 개방·개혁을 이끈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 얘기를 했다. 쥐를 잡는 데 흰 고양이면 어떻고, 검은 고양이면 어떠냐는 뜻이다. 지난 정부의 정책이라도 혁신성장에 필요하다면 채택하겠다며 한 말이다. 정책도 승계하는 마당에 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을 쓰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공공개혁이 시급한 마당에 최고경영자의 이념과 코드만 따져선 안 된다. 그토록 미워하던 적폐가 이 정부에서도 하나둘 쌓여가는 것은 아닌가. 이런 식이면 다음 정권이 진보든, 보수든 또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물갈이에 나서려고 할 것이다. 이념동일체 정권이 승계해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전두환을 이어받은 노태우가 그랬고, DJ를 승계했다는 노무현이 그랬고, MB 후임 박근혜도 그랬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도 예외일 수 없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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