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석호]100만 아빠가 40만 딸에게

신석호 국제부장

입력 2017-10-31 03:00:00 수정 2017-10-3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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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국제부장
너 아니? 아빤 말이야, 동갑 친구들이 100만 명이나 돼! 1970년 아빠가 태어난 해에 정확히 100만6645명이 태어났대. 통계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1957년부터 시작된 한 해 100만 명 이상 출산 시대가 1971년까지 15년이나 계속됐단다. 엄청나지? 너희 같은 40만 명 세댄 상상도 못 할 거야. 특히 너처럼 지난해 통계가 나오기 전까지 건국 이후 가장 적은 아이가 태어났던 2005년생(43만5031명)은 말이야.

아빠가 학교 다닐 땐 말이지, 한 반에 70명이 넘을 때도 있었어. 무조건 선생님 눈에 띄어야 한다! 우린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몸에 익혔단다. 초중고교는 대충 국가가 배정해 주는 곳에 다녔지만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엄청나게 경쟁했어. 좋은 직장 가기 위해서도, 그리고 직장 안에서도. 아빠의 경쟁자는 늘 100만 명 이상이었어.

너의 초등학교에 참관 갈 때마다 참 부러워. 한 반에 36명은 엄청 많은 거라며? 선생님 눈 피해 다니기도 어렵겠다. 너희들끼리 쑥덕쑥덕 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텐데 말이야. 좀 갑갑하더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렴. 아빠 땐 반장 아니면, 공부 1등 하는 애 아니면 이름표도 못 내밀었단다. 너흰 공부 잘하는 애, 음악 잘하는 애, 그림 잘 그리는 애, 운동 잘하는 애 모두 어깨 으쓱이고 살잖아?

근데 말이야. 아빤 요즘 고민이 많아. 아빠가 은퇴할 때쯤이면 한국은 초고령사회가 된대. 당연하지. 올해 만 60세가 되는 1957년생 선배님들부터 15년 동안 매년 100만 명 가까운 건강한 노인 은퇴자들이 쏟아져 나온단다. 아이들 과외비로 노후자금을 써버린 많은 이들은 ‘돈 없이 오래 살 위험’에 처해. 은퇴한 뒤에도 노인 일자리를 놓고 또 경쟁해야 할 판이야. 일본처럼 된다면 마지막 세상 떠날 병원 병상을 놓고서까지.

더 큰 걱정은 바로 너희들이야. 아빠 땐 그래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난을 당하기 전까진 나라 경제가 한 해에 10%씩 성장했어. 강남에서 고액 과외 안 받아도 스스로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지금보다 청년 일자리도 많았고.

그런 고도성장의 시대는 갔고, 새로운 성장동력은 잘 보이지 않고,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계속 심화되고…. 무엇보다 적은 청년들이 많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암울한 세상에 너를 내보내야 한다니 늘 마음이 짠해.

고령화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야. 선진국들을 보면 우리의 미래도 그다지 밝지가 않아. 노인지배 정치를 뜻하는 ‘제론토크라시’는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사건에서 힘을 과시했어. 젊은 영국인들은 유럽 대륙에 속해 기회를 찾고 싶었지만 돈 많고 이민자들이 싫은 영국 노인들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표를 던졌지.

노인들이 복지 지출을 늘리는 쪽으로 참정권을 행사하면 너희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어.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의 연금 개혁도 쉽지 않을 거다. 일자리를 둘러싼 노인과 청년들의 대결은 이미 시작된 듯하고 그나마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인들이 지갑을 닫으면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어. 한반도 통일도 너희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으련만 김정은의 핵 폭주에 요즘은 앞이 안 보인다.

100만 명 아빠와 엄마들이 40만 딸과 아들들에게 짐이 되면 안 될 텐데. 앞만 보고 힘을 합해도 시간이 없는 것 같은데 정치권은 보수건 진보건 정권을 잡기만 하면 상대방의 과거를 캐고 헐뜯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야. 뻔히 보이는 어두운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밝게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며 지혜를 모아야 해. 우린 운명 공동체니까.

신석호 국제부장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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