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이진]“탈원전하면 핵무장 잠재력 사라져 北이 가장 좋아할 것”

이진 논설위원

입력 2017-10-30 03:00 수정 2017-10-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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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한국원자력연구소장 장인순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은 “원자력을 반대할 권리는 있다”며 “다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00명 넘게 숨졌다거나, 고등어와 명태를 300년간 먹지 말라는 식의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해선 안 된다”고 힘줘 말 했다. 대전=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진 논설위원
《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중단할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에서 논의가 한창 진행되던 9월 말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원자력계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77)이 보낸 메일이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평생을 바쳤던 원자력 연구에 조종(弔鐘)이 울렸다는 절박한 심정이 담긴 메일이었다. 그는 해외 과학자 유치 정책에 발맞춰 1979년 미국에서 귀국해 허허벌판 상태였던 국내 원자력 연구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주역이었다. 한국 표준형 원자로 개발과 핵연료 국산화 등이 대표적인 성과다. 그를 대전의 개인사무실에서 만났다. 》
 

―신고리 5, 6호기 공사가 재개됐지만 탈원전 정책은 더 굳어졌다.

“아휴, 한시름 놓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이 공사 재개에 손을 들어준 점에서 희망을 봤다. 역시 젊은 사람들은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국내 두 번째 원전인 월성 1호기도 조기 폐쇄한다는데….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이 지났으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2년까지 10년을 더 써도 좋다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허락했다. 잔존가치만 해도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17기 중 103기가 40년이 넘었다. 그런 원전들에 비해 월성 1호기는 굉장히 안전하다. 그런데도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을 보면 대통령은 법 위에 있다는 것인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원전 수명을 80년까지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그만큼 과학기술을 신뢰하는 것이다.”


‘원전 직원들에게 무섭냐고 물어보라’


―원전 7기 주변 30km 이내에 320만 명이 사는 것은 문제 아닌가.


“원전이 몰려 있어 무섭다고? 하나 물어보자. 원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뭔가? 하루 8시간 일한다면 직원들은 하루의 3분의 1을 원전에서 살지 않나. 일반인의 방사선 피폭 허용치를 1(연간 1000μSv·마이크로시버트)이라고 하면 나 같은 원전 종사자는 50배, 사고 난 원전에서 일하는 인력은 250배를 허용한다. 실험해 보니까 이 정도는 노출돼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핵물질을 가장 많이 만져보며 살았다. 수없이 허용치를 넘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장 전 소장은 “원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번 해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 아닌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리기 때문에 그렇다. 후쿠시마 사고는 원자로 이상이 아니라 비상 발전기가 쓰나미(지진해일)로 망가졌기 때문에 일어났다. 전기를 빨리 공급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후쿠시마에서 원전의 모든 사고 가능성이 다 나왔다. 이를 통해 최악의 쓰나미, 최악의 지진이 와도 견딜 수 있게 우리 원전을 보강했다. 현재 원전은 매우 안전하다. ‘문명을 위협하는 최악의 위험은 비이성적인 두려움이다’란 말이 있다. 나는 원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왜냐고? 원전을 알고, 다룰 줄 아니까.”


―탈원전은 올해 6월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때 시작된 셈이다.


“나는 대통령이 고리 1호기에 화환이라도 걸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한국의 전력은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전압과 주파수는 가장 양질이면서 정전시간이 가장 짧다. 조국 근대화에 제일 큰 역할을 했다.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 원전이었다. 고생했다고 꽃다발 하나 걸어줄 만하지 않은가. TV에서 미국 항공모함 퇴역식을 본 적이 있다. 예포까지 쏘아 가며 2시간을 진행하더라. 항모는 그냥 쇳덩어리 아닌가. 거기에 무슨 혼(魂)이 있나. 그런데도 미국을 지켜줬다고 그 쇳덩어리에 경의를 표하더라. 왜 그런 걸 못 배우나.”

―아랍에미리트(UAE)에 한국 표준형 원자로를 수출했던 2009년과 지금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날 수출이 성사됐다는 뉴스를 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내가 다 큰 사람이 우느냐고 핀잔을 줬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날 밤을 새워 ‘신화와 역사를 창조한 원자력 기술 자립’이라는 글을 썼다. 광복된 뒤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었나. 남의 힘으로 간신히 독립을 했지만 문화 식민지에 경제 식민지, 기술 식민지였다. 그 상태에서 출발해 원자력 기술을 자립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자존심을 구긴 줄 아나.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 등에 자료를 달라고 요청하면 거절당할 때가 많았다. 마치 거지가 부잣집에 밥 얻어먹으러 가서 쫓겨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연구원들이 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자존심이 강했다. 하지만 원자력 기술 자립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 학회에 가서, 해외에 나가서 자료를 구걸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했다. 나는 30년간 가족하고 휴가 한 번 간 적 없었다. 기술 자립은 그냥 된 게 아니다.”

그는 한국이 대형 상용원자로, 중소형 원자로(SMART), 연구용 원자로까지 세 가지 원자로를 모두 수출한 세계 유일의 나라임을 강조했다. 상용은 UAE에, SMART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연구용은 요르단에 각각 수출했다. SMART는 원자력 잠수함에서도 쓸 수 있다. 그가 귀국했을 당시 나무상자 위에다 기기를 올려놓고 실험했고 연구비는 일본 원자력연구소의 70분의 1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제 일본을 제친 원전 수출국이 됐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자료 구걸해가며 기술자립 이뤘는데


―정부는 탈원전을 해도 수출은 지원한다고 했는데….


“과거 프랑스가 한국에 원전을 지을 때 국가원수가 두 번이나 방문했다. 캐나다가 중수로 원전을 우리나라에 수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UAE에 원전 수출을 시도했을 때 사실은 프랑스로 거의 결정된 상태였다. 그걸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한승수 국무총리의 역할이 컸다. 원전 수출에는 정상급 외교가 필요하다. 물론 우리 원전 기술이 완전히 뒷받침된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원자로가 시원치 않은데 아무리 외교에 공을 들인다고 수출에 성공하겠는가. 국내에선 탈원전을 한다면서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것은 콩나물 기르는 사람이 자기는 안 먹고 시장에 내다파는 것과 똑같다. 누가 그런 사람을 신뢰하겠는가.”

―탈원전 정책의 가장 큰 악영향은 무엇인가.

“전문 인력이 다 흩어지게 된다. 제일 중요한 요소가 설계 인력이다. 우리가 앞으로 신규 원전을 짓지 않으면 몇 년 내로 이들은 뿔뿔이 떠난다. 중국으로 다 갈 거다. 최근 UAE에 있는 우리 엔지니어한테 중국이 월급 3배를 줄 테니 5년간 일해 달라는 제안을 했다고 하더라. 원전 브레인이 없어지면 원전 자체가 완전히 무너진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면서 이 많은 고급 일자리를 그냥 버려도 되나.”

―원전은 국가 안보에도 보탬이 되는가.

“개인적으로는 핵무장에 반대한다. 하지만 원전 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은 핵무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잠재력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원자로는 부품 200만 개가 맞물려 돌아가고 엄청난 에너지를 안전하게 필요한 만큼만 꺼내 쓰는 장치다. 그에 비해 핵무기는 부품도 몇 개 안 되고 한순간에 터뜨리니까 굉장히 쉽다. 핵무기 제조는 70년 된 기술로 하이테크가 아니다. 휴대전화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쉬운 기술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어도 원전을 건설하지 못하는 이유다. 대형 핵무기는 폭발 실험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도 만들 수 있다.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지금 핵연료 재처리 시설은 없지만 기술은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다. 한국이 탈원전을 하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 북한이다. 북한은 한국이 핵무장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북한은 우리의 우수한 원전 기술과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중국 그리고 일본, 러시아도 한국의 탈원전을 반길 것이다.”

장 전 소장은 2000년 원자력연구소의 레이저 분리시설을 폐쇄하기 전 우라늄 농축실험을 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레이저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은 미국만 성공했던 첨단 기술이었다. 연구소는 단 3차례 실험 만에 우라늄235를 77%까지 농축했다. 핵무기에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 추가 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이 실험은 사후 보고 대상이 됐다. IAEA에 보고하니까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IAEA 사찰단이 6차례나 찾아와 실사를 했다. 한국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있는 그대로 보고한 점을 참작해 결국 징계를 받지 않았다. 당시 그는 “과학자로서 호기심에서 실험을 했다. 과학자가 그 정도 호기심도 없으면 무슨 과학자냐”고 사찰단에 당당히 맞섰다. 모든 책임을 혼자 지겠다며 사표까지 제출했다고 한다. 그는 “레이저 농축 기술을 자체 개발한 것은 정말 대단한 성과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그 뒤 각국에서 공동연구를 하자는 제의들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원전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에너지


―들어보니 원전 지상주의자 같다.


“나는 원전만 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다. 태양광도 하고 수력도 하는 등 ‘에너지 믹스’를 해야 한다. 다만 원자력은 가난한 대중을 위한 에너지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전력거래소의 최근 5년 평균 전력 판매단가를 보면 원자력을 1로 했을 때 풍력은 3.4배, 액화천연가스(LNG)는 3.5배, 태양광은 4.6배였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고 고령화가 빨라지면서 전기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부자들은 전기요금이 올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외환위기 때도 원-달러 환율과 원유 가격은 급등했어도 원전의 뒷받침 덕분에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았다. 우리 기업들이 외환위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토대였다.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하는 기후변화 시대에도 대응해야 한다.”

장 전 소장은 다음 세대에 우리가 물려줄 것으로 금수강산과 원전 기술, 딱 두 개를 꼽았다. 그래야 후손들이 고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전문가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진로를 불안해하는 젊은 원자력 연구자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걱정하지 마라, 끝이 아니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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