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불발돼도 큰 충격없지만… ‘경제 안전핀’ 하나 잃어

이건혁기자

입력 2017-10-09 03:00 수정 2017-10-09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만료 하루 앞둔 한중 통화스와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불만을 품은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장기화되면서 수교 25주년을 맞은 양국의 오랜 경제 협력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만기가 불과 하루 앞으로 다가온 한중 통화스와프의 연장 여부, 올해 안으로 협상을 시작해야 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 분야 추가 협상 등이 모두 불투명한 상황이다.

동시에 한국은 미국의 통상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다. 대외 개방도가 높은 상황에서 글로벌 주요 2개국(미국 중국)과 동시에 경제적 갈등을 겪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북한의 연이은 군사 도발로 안보 문제까지 얽히면서 한국 경제 외교가 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 한중 경제관계 첫 시험대

10일 만기를 맞는 한중 통화스와프 계약의 연장 여부는 한중 경제 관계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중국 런민은행과 2009년 4월 약 560억 달러(3600억 위안) 규모의 원-위안화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고 2014년 한 차례 연장에 성공했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4월 유일호 당시 경제부총리는 저우샤오촨 런민은행장과 만기 연장에 원론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뒤 중국 정부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정부 관계자는 “실무 단계 검토는 거의 마무리 단계지만 중국 당국의 최종 결정이 미뤄지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물론 중국과의 통화스와프가 그대로 종료된다 해도 당장 외환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가시화되는 것은 아니다. 한중 통화스와프는 총 560억 달러 규모지만 한국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외환(8월 말 기준 3848억 달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국제통화로 부상한 위안화의 위상을 감안할 때 한국으로서는 위기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안전핀’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지속적으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북한 리스크와 미국 등 주요국과의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한중 FTA의 추가 협상도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양국은 2015년 12월 한중 FTA를 발효시키면서 2년 내로 서비스 부문 후속 협상을 개시하고, 개시 2년 내에 완료하기로 협의했다. 하지만 협상 개시 시한이 약 2개월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한중 양국은 협상 개시를 정식으로 선언하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협정문에 기한이 명시돼 있기 때문에 서비스 투자 분야 협상은 개시될 것으로 보지만 협의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가 한중 FTA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 경제 외교, 안보 위기만큼 심각

한국의 경제 외교가 거듭 꼬이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강대국과의 경제 현안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이슈와 어지럽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나 중국과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이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이 안보를 의존하는 미국은 이를 이용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 공조를 위해 경제적으로 한국을 압박하지 말자”는 참모진의 조언을 무시하고, 한미 FTA 개정을 압박해 왔다. 결국 한국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한미 경제 동맹의 핵심 축인 FTA를 수술대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중국도 정치와 경제를 철저히 연계시키는 전략으로 한국을 몰아붙이고 있다.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비공식적인 보복을 계속하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이 사드를 안보 위협으로 여기고, 한국은 안보 측면에서 사드가 필요한 상황에서 양국의 경제 관계는 정치 문제와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안보 위기 상황 못지않게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책임 공방은 협상 상대방인 미국과 중국에만 이로운 일을 해주는 꼴”이라며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