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세계에 알리자” 5개언어 해설서 낸 의사

조건희기자

입력 2017-10-09 03:00 수정 2017-10-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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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571돌 한글날]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가 8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 ‘북성재’에서 한글의 원리를 음양오행으로 풀어낸 책을 들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느닷없이 출판사를 차리더니 전공과 무관한 한글 관련 책을 펴내는 대학병원 교수가 있다. 8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인문학 공간 ‘북성재’에서 만난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60·여)가 주인공이다. 그는 대뜸 “세종대왕이 쓴 ‘훈민정음’을 읽어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 유은실’은 없고 영락없는 한글학자가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571돌 한글날을 맞아 동료들과 함께 ‘한글, 자연의 모든 소리를 담는 글자’라는 한글 해설서를 펴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과 모음과 자음을 이루는 음양(하늘, 땅, 사람) 및 오행(물, 나무, 불, 흙, 쇠)의 원리를 문답으로 정리한 책이다. 책 왼쪽에는 한국어가 적혀 있고, 오른쪽 옆면에는 영어나 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외국어로 번역돼 있다. 유 교수는 “한글에 흥미를 느낀 외국인도 읽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198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89년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가 됐다. 하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참가했을 때 외국인들이 한글의 원리에 관심을 갖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한글 전도사’로 나선 이유다.

하지만 외국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사람에게조차 한글의 우수성을 알려주는 책이 별로 없었다. 지인인 한의사 김명호 씨(70)가 ‘한글을 만든 원리’라는 책을 썼지만 출판사를 찾지 못한 점도 안타까웠다. 유 교수는 2006년 직접 출판사 ‘허원미디어’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외도’에 나섰다. 그는 “많은 국민이 ‘가장 내세울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한글을 꼽지만 정작 쉽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한글 해설서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유 교수의 전공 분야인 병리학은 세포와 유전자 등을 관찰해 병의 원리를 파헤치는 학문이다. 훈민정음을 이루는 원리를 밝히는 것이 병리학과 비슷하다는 게 그의 지론. 한글은 발성기관을 글자 모양으로 흉내 낸 ‘상형’과 복잡한 소리일수록 획을 더하는 ‘가획’의 원리가 음양오행을 본뜨고자 한 세종대왕의 철학과 맞물려 어느 문자보다 과학적이다. 유 교수는 병의 원리를 파헤치듯 우리글의 낱소리를 하나하나 구분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몇 해 전부터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에게 틈틈이 한글의 창제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유 교수는 “한글을 곱씹는 기쁨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조만간 독일어와 스페인어 등으로도 해설서를 번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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